21일(현지 시간) 미국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집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2023년 우크라이나 지원 연대가 약화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지원이 약해질 것이라고 볼 이유가 없다”며 “일본부터 다른 많은 국가들로부터 계속된 지원을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집무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마주 앉았을 때도 “우리의 동맹인 유럽 그리고 일본 등은 미국과 같이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함께해 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유럽 외에 미국과 함께할 대표적인 동맹으로 거듭 일본을 꼽은 셈이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슬로건과 함께 동맹 복원을 내걸고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줄곧 동맹국과의 연대를 부각하며 일본을 빠짐없이 거론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는 물론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심지어 아프리카 전략에서도 일본은 늘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우는 핵심 동맹으로 등장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미국의 아시아 동맹이라는 상징성 때문만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공급망 재건을 위한 최첨단 반도체 개발은 물론 네덜란드와 함께 일본과 3자 협정을 맺고 중국 반도체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첨단 반도체 장비 규제에 나섰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양자컴퓨터와 우주개발 등 바이든 행정부가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산업으로 분류해 외국에 높은 펜스를 친 핵심 기술 분야에서도 미국은 일본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내년 초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방미 때 논의될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이 미일 군사동맹의 새로운 단계를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본이 16일 반격능력을 명기한 3대 안보문서 개정을 발표하자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강화하고 방어하기 위한 대담하고 역사적인 조치”라고 성명을 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독일 등 다른 미국 동맹국들이 방위비 증강을 결정했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백악관 성명까지 내며 일본의 군비 증강을 환영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일본과 호주의 군사력 강화를 계기로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이 일본, 호주를 축으로 동중국해와 남태평양, 한반도까지 인도태평양 핵심 지역에 대한 유사시 공동 대비태세를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미-호주 2+2(외교·국방) 회담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일본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호주 내 미군 준비태세 계획과 통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일 군사 밀착은 한일 관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동안 한일 갈등에 거리를 두던 바이든 행정부도 부쩍 한일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활발한 물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예 미국 조야에선 한미일 군사 협력에 거리를 두려는 한국의 태도에 “국내 정치보다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조급한 목소리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한일 관계는 외교 전략은 물론 국내 정치적으로도 폭발력이 큰 이슈인 만큼 전략적 외교가 필요하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며 느긋하게 기다리기엔 한일 관계 주변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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