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대회 공들이는 카타르
검은돈-인권침해 등 구설에도 2000년 이후 최고 대회 꼽혀
카타르 국가 위상 제고에 한몫… 경기도 면적 비슷한 카타르
짧은 이동거리-셔틀버스 등 올림픽 예행연습하듯 운영
《3880km. 8년 전 브라질 월드컵 당시 상파울루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미국 대표팀이 조별리그 2차전 장소 마나우스까지 이동한 거리다. 서울∼부산 거리의 8배가 넘는다. 비행기로도 4시간가량 걸린다. 미국은 3차전을 헤시피에서 치렀다. 마나우스와 헤시피 간 거리는 4613km. 미국이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는 동안 브라질 내에서 이동한 전체 거리는 1만 km를 넘었다. 올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미국이 조별리그 3경기를 하는 동안 숙소와 경기장을 오가며 이동한 거리는 100km 정도다. 그동안의 대회와 달리 카타르 월드컵은 사실상 한 도시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 올림픽 따라 한 카타르 월드컵
카타르 월드컵은 그동안의 대회와 달리 곳곳에서 올림픽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국가 단위 개최인 월드컵은 대개 개최국의 8∼12개 도시에서 나뉘어 열린다. 도시 단위 개최인 올림픽은 하나의 도시, 많아야 중심 도시 주변까지 2, 3개 도시에서 진행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12개 도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11개 도시에서 경기가 열렸다.
카타르 대회는 이전 월드컵과 달랐다. 카타르의 전체 면적은 1만1600km²로 한국의 경기도와 비슷한 크기다. 수도 도하를 비롯해 알라이얀, 알코르 등 5개 도시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렸는데 사실상 하나의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전체 경기장 8개가 반경 60km 안에 모여 있었다. 차로 이동할 경우 1시간가량이면 8개 경기장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했던 구자철(제주)은 “베이스캠프에 머물다 경기가 열리는 도시로 비행기를 타고 가 2박 3일 머물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며 “카타르 월드컵에선 버스 타고 20∼30분이면 숙소에서 경기장과 훈련장에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관중도 카타르 월드컵이 열린 대부분의 경기장을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었다. 팬들을 위해 경기장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는 그동안 올림픽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등장했다.
올림픽처럼 사실상 하나의 도시에 세계 각국 팬들이 모이면서 월드컵 기간 내내 도하는 축제 분위기였다. 도하 시내 전통시장인 수끄와끼프에서는 각국의 축구 팬들이 거리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영국에서 온 한 축구팬은 “그동안에는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도시에 가면 대개는 경기에서 맞붙는 두 나라 팬들만 보였는데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어딜 가든 여러 나라 팬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색다르다”고 했다.
○ 올림픽 원하는 카타르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작은 사막 국가인 카타르는 국제사회에 이름을 더 알리고 싶어 했는데 이번 월드컵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카타르 월드컵 기간에 340만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4년 전 러시아 대회(330만 명)보다 많았다고 알렸다. 카타르월드컵조직위원회는 월드컵 기간 세계 각국에서 140만 명이 카타르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브라질을 방문한 112만 명보다 많았다. 영국 BBC는 25일 홈페이지를 통해 ‘2000년 이후 월드컵 중 어느 대회가 최고였는지’를 묻는 설문을 진행했는데 카타르 월드컵이 절반이 넘는 52%의 지지를 얻어 1위를 했다. 2위는 14%가 꼽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BBC는 “카타르 월드컵은 이주노동자의 사망,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 침해, 겨울 월드컵 등 여러 논란으로 시작했지만 역대 최고의 결승전과 함께 성대하게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카타르는 이제 시선을 올림픽으로 돌리고 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카타르 월드컵 경기 일정이 절반도 지나지 않은 이달 3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있는 카타르가 2036년 올림픽을 유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카타르는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로 국제대회를 잘 치를 수 있다는 걸 증명했고 최신의 경기장, 지하철, 공항 등 사회기반 시설도 잘 갖췄다”고 전했다.
1988년 아시안컵 축구대회,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201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국제 스포츠 행사를 통해 이름을 알린 카타르는 이후로도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카타르는 2023년 아시안컵 축구대회와 2030년 도하 아시아경기까지 유치한 상태다. 이제 남은 목표는 올림픽 유치다. 카타르는 앞서 2016년, 2020년 올림픽 유치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열사(熱沙)의 땅’ 카타르는 그동안 평균 최고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는 여름 더위가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올림픽은 주로 7∼8월에 열려 왔다. 하지만 카타르는 그동안 5∼7월에 열려 왔던 월드컵을 사상 최초로 11∼12월에 개최했고 경기장마다 20∼22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야외 에어컨 시스템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다. 로이터는 “그동안 카타르는 무더운 날씨 때문에 올림픽 유치전에서 최종 후보에 들지 못했는데 이번 월드컵에서 선보인 경기장 에어컨 시스템이 이런 우려를 없애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카타르 정부가 월드컵 개최를 위해 들인 총비용은 2200억 달러(약 294조 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는 4년 전 러시아 월드컵 당시 러시아 정부가 쓴 142억 달러의 15배가 넘는 액수다. 올림픽을 개최하려면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또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경기장 등 관련 시설물의 관리에도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이제는 올림픽 유치에 나서려는 국가들이 예전만큼 많지 않은 상황이다. 유치에 대한 각국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오일 머니’를 무기로 올림픽 유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카타르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 ‘스포츠 워싱’ 논란도
카타르 월드컵은 여러 논란을 낳기도 했다.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검은돈이 오간 정황이 드러났다. 카타르 인구의 90%가 넘는 해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국제사회의 이슈가 되기도 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은 대회 내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월드컵 개막 전 국제인권단체들은 “경기장 등 카타르 월드컵 관련 시설물 공사를 했던 이주노동자 6000여 명이 사망했는데도 카타르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카타르가 월드컵에 이어 올림픽까지 개최하려는 것을 이른바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 전략으로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스포츠 워싱’은 독재 정치, 인권 유린 등 특정 세력이나 정부의 부당한 행태를 겨냥하는 부정적 평판을 세탁하기 위해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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