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날두를 좋아한다[2030세상/박찬용]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7일 03시 00분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리오넬 메시가 출전한 경기를 현장에서 본 적이 있다. 2015년, 빠른 패스 위주의 이른바 ‘티키타카 축구’의 전성기였다. 메시는 그때도 덜 뛰었다. 보고를 받은 뒤 성과를 내야 할 때만 출동하는 임원 같은 느낌이 있었다.

사이먼 쿠퍼의 명저 ‘바르사’를 읽으며 이유를 알았다. 네덜란드의 요한 크라위프가 창안한 토털 사커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에서 구현됐다. 토털 사커의 핵심은 공간 창출. 공간과 상황을 읽어 기회를 만든다. 메시가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일이다. 그 결과 모두가 움직이는 토털 사커에서도 메시는 내내 걷다가 중요할 때만 폭발하듯 공간을 찢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르헨티나 팀도 그랬다. 메시를 동경하던 소년들이 메시의 팀 동료가 되었으니 그들은 메시에게 기꺼이 헌신했다. 메시 역시 자신이 가장 편안해하는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나섰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가 우승하고 메시는 이번 월드컵의 주인공이 되었다.

메시의 빛을 강조하기 위해 호날두가 그림자가 된 면이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호날두의 도전은 메시보다 빨리 끝났다. 누가 더 위대한지에 대한 답도 메시 쪽으로 기울었다. 한국에서는 호날두가 2019년 내한 친선전에 결장한 ‘노쇼 사태’ 등이 맞물려 ‘쌤통’이라 보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이 원고는 그에 대한 작은 반론이다.

메시와 호날두는 위대하다는 점을 빼면 모든 게 반대다. 메시는 재능을 인정받아 온 가족이 바르셀로나로 이민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세계 최고의 축구 전술을 흡수했다. 메시의 경력 중 이적은 딱 한 번이다. 호날두는 12세에 혼자 마데이라에서 리스본으로 상경했다. 영어를 전혀 못 하는 18세 청년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20세에 아버지가 알코올의존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호날두는 홀로 개인 능력을 계속 향상시켰다. 맨유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를 챔피언으로 만들고 이탈리아 유벤투스로 넘어가 리그에서 우승했다. 나는 선수 생활 중 겪은 도전과 역경의 정도를 보면 호날두가 훨씬 어려운 게임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둘 다 가진 한계도 있다. 둘 다 지난 시대의 전설이다. 나는 이들이 현대 축구 최후의 ‘디바’형 선수라 생각한다. 호날두가 슛을 난사하고 메시가 수비를 외면해도 기량이 대단하니 다른 팀원들이 그들을 보좌했다. 지금 세계 수준의 축구는 그렇지 않다. 축구 전술의 흐름이 섬세하면서도 파괴적인 역습으로 넘어가며 모든 선수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높아졌다. 탱크처럼 달리고 송곳 같은 슛을 하면서 팀플레이와 수비에도 가담해야 한다. 그 흐름을 반영한 선수들이 손흥민이나 음바페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호날두 같은 인간만 줄 수 있는 원초적 감동이 있다. 호날두는 맨몸으로 노력해 세계 최고의 재능을 갖게 되었다. 이런 재능은 고대 올림픽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사람들을 끓게 만든다. 스페인 작가 마누엘 빈센트는 ‘호날두가 열정을 자극한다면 메시는 경탄을 자아낸다’고 표현했다. 그 말대로다. 이번 월드컵에서 메시는 한 번 더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나는 호날두가 끝까지 보여준 열정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리오넬 메시#호날두#최고의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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