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 길로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도로 위에서 사진을 찍고 푸드트럭에서 커피를 마시며 연말 분위기를 즐겼다. 뉴욕시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12월 일요일마다 5번가 중심지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었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성명에서 “관광객과 뉴욕 시민이 함께 안전하고 즐거운 연말을 보내도록 ‘(차 없는) 오픈스트리트’를 운용한다”면서 “관광객에게 전하고 싶은 두 가지 메시지가 있다. 행복한 연말을 보내고 돈 많이 쓰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해 내내 관광객이 몰리는 뉴욕은 특히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야 주간이 최대 관광 성수기로 꼽힌다. 하지만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덮쳤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오미크론 변이가 급속히 확산돼 12월이 되기도 전에 항공 및 호텔 예약이 대거 취소됐다. 반면 올해는 뉴욕 어디를 가든 미국과 유럽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달러 가치가 오르고 인플레이션은 기승을 부리지만 약 3년간 참았던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뉴욕시는 올해 관광객 급증으로 일자리 4만1000개가 창출되고 약 600억 달러(약 76조 원)의 경제적 효과를 봤다고 분석했다.
“올해 뉴욕 관광객 5640만 명”
23일 오후 갑작스러운 혹한으로 뉴욕 기온이 하루 새 10도가량 떨어졌다. 미국 거의 전역을 강타한 눈 폭풍의 영향이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은 센트럴파크와 록펠러센터 앞에 설치된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5번가 레고 매장 밖에는 40∼50명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록펠러센터 크리스마스트리 정면 사진을 찍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뉴욕을 대표하는 라디오시티 ‘크리스마스 스펙태큘러(Christmas Spectacular)’ 공연도 만석이었다.
추위가 더욱 거세지며 24, 25일 뉴욕 기온은 영하 14∼15도로 내려갔다. 강한 바람 탓에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에 달했다. 하지만 강추위도 관광객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일간 뉴욕포스트는 전했다.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온 20대 관광객 블레이크 씨는 24일 뉴욕포스트에 “평생 이런 추위는 처음이지만 내일 브루클린다리를 걸어볼 계획”이라며 “기억에 남을 추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물가 고금리에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뉴욕시는 3년 만에 돌아온 연말 성수기를 반기고 있다. 뉴욕시 관광청은 올해 뉴욕을 찾은 관광객이 약 5640만 명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71.4%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의 약 85%까지 회복됐다. 해외 관광객도 약 900만 명이 찾아 지난해 3배 수준으로 늘었다.
뉴욕을 찾는 해외 관광객 1위였던 중국 관광객이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여행 규제로 대폭 줄었지만 영국 프랑스 스페인 같은 유럽 관광객이 몰린 덕을 봤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유로모니터가 최근 발표한 ‘올해 관광객이 가장 많은 세계 10대 도시’ 중 유럽이 아닌 도시는 두바이와 뉴욕뿐이었다. 해외 관광객만 따지면 뉴욕은 1위 파리에 이어 2위였다. 찰스 플레이트먼 관광청 이사장은 “관광은 뉴욕시 경제의 9%를 차지하는 중요한 산업”이라며 “새해에도 관광 인프라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여행 산업은 계속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 장식에 1만 시간 투자
11월 말 추수감사절부터 12월 말 타임스스퀘어 신년맞이 행사까지 뉴욕 호텔 숙박비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고물가에 구인난까지 겹치며 11, 12월 뉴욕 호텔 1박의 평균가격은 400달러(약 51만 원)로 2019년 대비 24% 올랐다. 하지만 뉴욕 전체 호텔 점유율은 이미 90%에 이르렀다.
미 서부 대표 관광 도시 샌프란시스코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샌프란시스코 호텔 점유율은 여름 성수기인 8, 9월에도 73% 수준이었다. 호텔 1박 평균가격은 올 6월 278달러(약 35만 원)로 정점을 찍었지만 2019년 가격에는 못 미쳤다. 보험기업 알리안츠 파트너스 USA가 이달 17∼29일 미국 내 항공 여정 300만 건을 조사한 결과 뉴욕이 연말 1위 목적지로 꼽혔다.
뉴욕 관광 회복 속도가 빠른 이유로는 뉴욕 주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관광 캠페인과 기업 투자를 꼽을 수 있다. 뉴욕 고급 백화점 ‘삭스피프스애비뉴’는 가수 엘턴 존을 초청해 대대적인 연말 쇼윈도 장식 점등식을 벌였다. 음악에 따라 불빛이 바뀌는 조명 60만 개를 건물 외벽에 설치해 엘턴 존이 직접 부르는 노래 ‘Step Into Christmas’에 맞춰 다채로운 빛의 쇼를 선보인 것이다. 삭스 백화점 앞에서 만난 관광객 리나 씨(44)는 “고향 노스캐롤라이나만 해도 연말 분위기를 띄우는 화려한 장식이 덜하다. 뉴욕에 오면 크리스마스 시즌이 왔다는 생각에 설렌다”고 말했다.
뉴욕 랜드마크로 꼽히는 백화점 버그도프굿맨 인테리어 장식을 25년 넘게 담당해온 데이비드 호이 씨는 뉴욕타임스(NYT)에 연말 장식을 위해 “2월부터 7개 쇼윈도에 맞춰 새로운 주제로 스케치를 시작한다. 이후 9개월 동안 100명이 총 1만 시간을 들여 일일이 수작업한다”고 말했다. 뉴욕 록펠러센터도 매년 미 전역에서 25m 높이 전나무를 구해 발광다이오드(LED) 전구 5만 개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300만 개가 박힌 별로 장식한다. 록펠러센터 앞 ‘천사상(像)’은 조각가 발레리 클레어바우트가 1969년 만든 작품이다. 31일 밤 새해 전야 ‘볼드롭’ 행사가 열리는 타임스스퀘어에는 약 100만 명이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시는 이같이 후끈한 연말 분위기에 힘입어 11월 중순부터 내년 1월까지 약 650만 명이 뉴욕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 여행 업계는 내년에도 여행 수요는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본다. 팬데믹 기간 억눌렸던 여행을 위해 다른 소비를 줄이더라도 돈을 쓸 것으로 예측한다.
새해 여행 수요도 증가 전망
뉴욕 인기 식당은 내년 초까지 이미 예약이 끝났고 유명 식당 앞의 줄도 길어졌다. 니티야 챔버스 론리플래닛 에디터는 CNBC에 “인플레이션이나 경기침체 우려도 오랫동안 집에 발이 묶인 소비자가 집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행 패턴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포브스는 미국인이 값비싼 해외여행보다 국내 여행으로 눈을 돌릴 것으로 예상했다. 또 식당에서 식사한 뒤 치르는 팁도 줄고 있다. 최근 외식 기업 팝메뉴가 소비자 10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식사 후 ‘음식 가격의 20% 이상을 팁으로 준다’는 응답은 43%로 지난해(56%)보다 13%포인트 줄었다.
새해 관광 수요를 잡기 위한 글로벌 관광 도시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주는 180억 달러(약 23조 원)를 투자해 존F케네디 국제공항을 넓히고 있다. 앞으로 3년 내 뉴욕시에만 호텔 객실 1만1000개가 늘어날 예정이다.
뉴욕시 관광청은 내년 ‘힙합 탄생 50주년 행사’ 같은 이벤트로 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는 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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