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힘을 넣는 사업 중 하나는 ‘서비스업 활성화’다. 서비스업을 발전시키면 내수를 키울 수 있고, 고용에도 효과적이다. 생산이 10억 원 늘어나는 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취업자는 제조업이 6.2명인 데 비해 서비스업은 12.5명(2021년 한국은행 발표)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서비스업을 강조해야 할 정도로 매번 서비스 혁신의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8월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안경업, 이·미용업, 도매시장업, 리스업 등 11개 서비스업 분야의 진입규제에 대해 토론회를 열었다. 진입규제를 없애면 더 많은 참여자가 뛰어들어 산업이 커지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예를 들어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안경사 면허가 없으면 안경점을 열 수 없고, 안경사는 안경점 1개만 차릴 수 있다. 토론회를 통해 자금력을 가진 개인이나 법인에도 진입을 허용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살펴보려 했다.
하지만 빨간 머리띠를 두른 수십 명의 안경사들이 나타나 토론회장을 점거했다. 그들은 “진입장벽을 낮추면 영세 사업자들이 다 죽는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나흘간 예정된 11개 업종의 토론회 중 절반이 취소되는 파행을 겪었다. 의료기사법의 핵심 내용은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았고, 전국 안경점들은 대체로 소규모 구멍가게처럼 운영되고 있다.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비스업 중에서 특히 영리병원에 관심이 높았다. 그는 “영리병원을 허용해야 의료 분야에 민간 투자가 흘러들어오고, 의료서비스 질도 높아진다”고 확신했다. 참고로, 한국 의료법에는 비영리법인만 병원을 운영할 수 있게끔 돼 있다. 비영리법인은 이익이 나더라도 투자자에게 배당할 수 없다. 투자자 입장에선 비영리재단에 투자할 유인이 없는 것이다. 투자가 부족하다 보니 종합병원이 생기기 힘들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정도다. 종합병원이 부족하다 보니 예약하려면 2, 3개월씩 기다려야 한다.
경제부처 최고 수장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였지만 결국 지금까지 영리병원은 설립되지 않았다. “사람 생명을 담보로 돈을 벌려고 하느냐”, “의료비가 올라가 부자만 좋은 서비스를 받는다”와 같은 부정적 국민감정에 무너졌다. 정말 부자만 좋은 서비스를 받는 의료 양극화가 일어나는지, 아니면 보통 사람의 종합병원 접근이 더 편해지는지 이성적인 논의의 장은 없었다.
윤석열 정부도 서비스 혁신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정부는 29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이끄는 서비스산업 발전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당정은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협의하면서 5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서비스’를 꼽았다.
내년엔 수출과 고용이 휘청거리고, 성장률은 1%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기에 서비스업 활성화에 더욱 눈길이 간다. 한국 서비스업 취업자는 주로 숙박·음식업에 몰려 있고, 정보통신업이나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는 많지 않다. 의료, 교육, 관광 등에서 돈 있는 사람이 국내에서 돈을 더 쓰고,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돈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집단 이기주의, 부정적 국민감정, 총론에선 찬성하지만 각론에서 반대하는 부처 갈등 등을 극복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서비스업 혁신이 가져올 사회 변화상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보여줘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는 게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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