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가 되면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이유로 내가 태어난 곳으로부터 이토록 멀리 떨어져 사는 건지. 내가 쓰는 책들도 모두 스페인어인데.
왜 한국에서 사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집중한다. 다행히 그 이유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나, 사진가 김효연의 ‘감각 이상’이라는 책 덕분이다. 작가는 경남 합천과 일본을 오가며 히로시마 원폭에서 살아남은 한국인 생존자들의 궤적을 쫓는다. 달걀 몇 알을 들고 있는 한 노인의 두 손을 찍은 사진이 어떤 이미지보다도 그 잔인했던 사건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둘, 후암시장 귀퉁이에서 김치를 파는 할머니 덕분이다. 한국에서 맛본 최고의 김치로, 쌀밥에 콜롬비아식 렌틸콩 요리를 이 김치와 함께 먹으면 간단하지만 훌륭한 식사가 된다. 셋,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을 세 번 봤다는, 아내의 친구 때문이다. 한 번은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또 한 번은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마지막 한 번은 여자 주인공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봤다고 한다. 넷, 강원도 철원의 한국 국경 근처에서 열리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본 관객들 덕분이다. 축제의 둘째 날,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전혀 자리를 뜨지 않고 전설적인 가수 한영애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은 마치 제례 같았다. 다섯, ‘501 북클럽’ 덕분이다. 한 달에 한 번 비밀결사대 회의에 참석이라도 하듯 주최자의 집에 모여 각자 읽은 책의 신비함을 밝히는 독서 모임이다.
여섯, 해파리의 노래들 덕분이다. 해파리는 두 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전자 음악 그룹으로 한국 전통음악이 가진 요소들을 재해석하여 음악을 만든다. 내가 들은 이들의 음악은 유행을 좇거나 비슷비슷한 조합으로 만들어낸 수백 곡의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노래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작업으로 보였다. 일곱, 삼성중앙역 근처에 있는 작은 멕시코 식당 ‘비야 게레로(Villa Guerrero)’의 주인이 만드는 타코 덕분이다. 식당 주인인 이정수 씨는 2014년 멕시코 톨루카(Toluca)에서 6개월간 거주하며 현지의 시장 맛집 주방장들과 겨룰 만한 실력이 될 때까지 멕시코 요리를 배웠다. 비야 게레로는 백화점이나 쇼핑몰 입점에는 관심이 없으며, 그저 대가들이 가르쳐준 요리에 경의를 담아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데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여덟, 남산 꼭대기로 오르는 등산로 주변에 촘촘히 박힌 나무들 덕분이다. 이 산속엔 욕심 많고 뚱뚱한 거미와 정신 나간 다람쥐와 워커홀릭 딱따구리가 산다. 아홉, 새로 사귄 예술가 친구들 때문이다. 람한, 김아영, 박혜인. 올해 관람한 이들의 멋진 전시회들은 아직도 나의 꿈에 등장한다. 열, 빵 가게 ‘오월의 종’에서 파는 단팥빵 덕분이다.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추위를 뚫고 그 가게에까지 가도록 만드는 맛이다.
열하나, 가수 정차식의 노래 ‘빛나네’의 뮤직비디오 덕분이다. 화면에서 정차식은 어느 날 밤 제주도의 도로를 차로 가로지르다가 옆길로 빠져 한 작은 술집 앞에 차를 세운다. 가게로 들어서선 그는 바(bar) 자리에 앉는다. 그곳엔 주인을 제외하고 두 명의 손님이 있다. 한 명은 안쪽 테이블에, 또 한 명은 또 다른 구석에. 정차식은 금방 나온 술잔을 앞에 두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노래를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손님과 주인이 정차식의 옆에 일렬로 앉아 리듬에 맞춰 함께 머리를 양쪽으로 까딱거린다. 음악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들의 고개는 갈대처럼 일렁인다. 깊은 밤중, 알 수 없는 사연을 가진 네 사람이 몇 분간 똑같은 순간을 보낸다. 열둘, 독립출판사 ‘쪽프레스’ 덕분이다. 쪽프레스는 포커 세계챔피언십 결승전의 패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정성을 담아 책을 출판한다. 열셋, 마마킴의 싸구려 술 덕분이다. 1973년에 문을 연 이 술집의 메뉴판에 적힌 숫자는 역동적인 물가에 비하자면 잔잔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마지막 열네 번째 이유는, 시인 이문재의 작품 ‘끝이 시작되었다’ 덕분이다. 함께 있다는 것이 불가능했던 지난 2년 사이 집필한 그의 시 일부를 다시 읽으며 나는 이렇게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다. ‘드디어 끝이 시작되었다/서로 손을 잡고 끝의 시작을 바로 보자/낡은 것은 가고 있지만/새것은 아직 오지 않고 있는/저녁 같은 혹은 새벽 같은 이 시간’, ‘바야흐로 끝이 시작되었다/춤추고 노래하자 안팎의 새것을 마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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