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가짜 병으로 무더기 병역 면제 의혹… 비리 뿌리째 도려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3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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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등 질병을 앓는 것처럼 속여 병역을 면제 또는 감면 받은 병역 회피자들에 대해 검찰과 병무청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현재 수사 대상에 오른 사람은 70여 명에 달한다. 프로배구 OK금융그룹의 조재성 선수는 거짓 뇌전증으로 4급 판정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프로축구 선수와 연예인, 법조인 자제 등도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수사가 본격화된 만큼 앞으로 뇌전증 외에 다른 가짜 질병으로 병역을 회피한 사례도 적발될 공산이 크다.

간질로 불렸던 뇌전증은 주로 뇌파검사나 MRI를 통해 진단한다. 하지만 검사를 해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에는 얼마나 자주 증상을 보였는지 등 병력을 고려해 판단한다. 병역 기피자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 뇌전증에 걸린 것처럼 연기를 했다. 일부러 자신의 신체 일부를 망가뜨렸던 예전 수법에 비해 한층 교묘해진 것이다. 의사들이 대가를 받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줬는지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병역 브로커의 행태는 더욱 대담해졌다. 구속 기소된 구모 씨는 서울 강남구에 버젓이 사무소를 차려 놓고 합법적인 상담인 것처럼 위장했다. 온라인상에서도 ‘병역의 신’이라는 별칭으로 활동하며 광고까지 했다. 송파구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활동한 김모 씨도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병역 면탈을 알선해주고 최대 1억 원의 수수료를 받아 챙겼다. 이런 거액을 부담할 여력이 있는 부유층이 법을 어겨가면서 군대를 빠지려 했다는 점이 더욱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검찰은 수사팀 규모를 2배로 늘리고 수사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디지털 포렌식 등을 통한 증거 수집도 강화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새로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취지다. 병역 비리가 판치면 병력 부족은 물론이고 나라 근간이 무너진다. 이런 중범죄를 수사하는 데 시간과 대상의 제약이 있을 수 없다. 병역 의무를 저버린 자들과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패거리를 남김없이 근절할 때까지 강도 높은 수사와 처벌이 계속돼야 한다.
#가짜 병#병역 면제#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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