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을 24일 새벽 통과시켰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으로 법정 처리 시한은 22일 초과됐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가장 늦은 예산안 처리다. 그 와중에도 여야 실세 의원들은 수십억 원이 넘는 지역구 예산을 챙겨 갔다.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111억 원을 추가로 확보했고,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정부안에 없던 지역예산 62억 원을 따냈다.
내년 예산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3000억 원이 줄었다. 정부가 짠 예산안보다 총지출이 줄어든 건 2020년도 예산안 이후 3년 만이다. 최장 지각 처리에다 순감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의 ‘예산 나눠 먹기’는 이번에도 반복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를 두고 “국회 통과 비용”이라고 했다. 정부 예산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값이라는 뜻이다.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도 올해 국회 통과 비용 중 하나가 됐다. 정부안에는 1원도 담겨 있지 않았던 지역화폐 예산은 3525억 원으로 늘어 내년 예산에 반영됐다. 민주당이 요구했던 7050억 원의 절반이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돈으로 알아서 하라는 정부와 여당의 입장을 돌려세우는 데는 성공했다. 지역화폐 예산은 대표적인 ‘이재명표 정책’이다. 그가 경기도지사였을 때 역점 사업이었고, 지역화폐의 한계를 지적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대해선 “조사와 문책”을 주장하기도 했다.
사라질 국비 지원이 되살아났지만 모든 지자체가 반기는 건 아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최근 “내년 정부 예산이 지원되더라도 온통대전(지역화폐) 발행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그는 취임 후 “온통대전 운영 예산이 연간 2500억 원, 4년이면 1조 원”이라며 지역화폐 관련 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밝혀 왔다. 지역화폐의 효과를 두고 의견과 연구 결과들이 엇갈리는데도 국회에서 169석 야당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카드 중 하나로 활용된 셈이다.
국회 통과 비용은 앞서 언급한 4000억 원에 가까운 돈에다 감춰진 비용들이 더 있다. 실생활과 직결된 세법 개정안들도 예산 부수 법안이기 때문에 예산안과 함께 뒤늦게 통과됐다. 당장 국내 주식 투자로 번 돈이 5000만 원을 넘으면 세금을 내야 할지 여부는 새해를 1주일여 남겨두고 최종적으로 시행이 2년 유예됐다. 그간 개인 투자자와 증권사들이 감내한 혼란도 숫자로 잡을 수 없는 국회 통과 비용이다.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서울로 출장 왔던 공무원들의 출장비도 늘었다. 출장비가 바닥 나 개인 주머니에서 30만∼40만 원씩을 꺼내 썼다는 말도 들린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에 따르면 통과 직전에 수정된 세법으로 달라진 국세 수입 변동분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세수 변화가 800억 원 정도밖에 안 돼 수정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2021년도 예산안 때는 그보다 적은 금액도 반영됐다. 이 또한 막판에 급하게 처리하며 우리가 낸 비용이다. 어떤 의사 결정을 토대로 온 국민이 이 같은 국회 통과 비용을 나눠 내고 있는지 새해에는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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