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의 조건을 연구해온 로버트 월딩어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행복의 결정적 요인은 부(富)도 명예도, 학벌도 아니었다”고 했다. ‘하버드 인생 연구’를 이끌고 있는 그는 “하버드대를 나왔다고 해서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점이 명확하다”며 “인생에 있어 오직 중요한 한 가지는 사람들과의 따뜻하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오랜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그가 내놓은 신년 메시지다.
월딩어 교수팀이 대를 이어 맡은 연구는 1938년부터 하버드대 학생과 보스턴 빈민가의 10대 등 700여 명의 삶을 2년마다 추적, 분석한 것이다. 수천 명의 후손들까지 85년간 쌓아온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객관적인 의학 자료들이 보여주는 결과도 다르지 않다. 외로움과 고립에 시달린 사람들은 중년이 되면서 신체 건강이 급격히 저하되고 뇌 기능은 떨어졌으며 수명도 더 짧았다.
한국과 다른 미국의 상황을 우리에게 곧장 대입, 비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월딩어 교수도 지적했듯 한국에는 확고한 대학 서열이 있고 서울대 등 명문대 입학 경쟁은 치열하다. 번듯한 대학졸업장 없이는 취업이 어렵고, 빈자를 보듬어야 할 사회적 안전망은 취약하다. 서로를 비교하며 줄 세우는 문화 속에서 한국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 청소년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 수준이다.
올해는 특히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 에너지난 등으로 어느 때보다 가혹한 도전에 맞닥뜨린 상황이다. 그러나 월딩어 교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가족과 친구, 이웃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확언한다. 하버드대 연구가 시작된 것도 대공황이 미국을 휩쓸고 지나간 직후였다. 좋은 인간관계가 주는 안정감과 연대감이 있다면 각박한 환경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다.
경제적 기반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다만 외형적 조건보다는 가까운 이들과 함께 쌓아가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인생 종착점에서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하버드대 연구 결과는 말해주고 있다. 인생 주기를 넓혀 보면 행복의 정의와 조건은 달라질 수 있고 또 달라져야 한다. 올해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한 해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월딩어 교수에 따르면 이것이 “인생 최고의 투자”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