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때도 경제성장률 ‘목표’는 3%… 실용·협치·타협 없인 現 위기 탈출 난망
협치 기회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한남동 관저에 야당 초청은 언제?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세계에는 ‘2년 차 징크스(sophomore jinx)’가 있다고 한다. 데뷔 첫해 펄펄 날던 선수들도 2년 차가 되면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사례가 흔하게 나타난다. 자초한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지만 한국의 대통령들도 집권 2년 차에 정권의 명운이 달린 위기와 봉착하는 징크스를 겪어 왔다. 2000년 이후 선출된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가 없었다.
2003년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3월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2년 차인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시기다. 세월호 침몰은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2년 차에 벌어진 참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팬데믹 위기와 처음 맞닥뜨린 것은 집권 3년 차 12월이지만, 경제 정책의 간판인 소득주도성장이 좌초한 것은 2년 차일 때다.
2년 차 징크스는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경제 위기 징후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밀려든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파도는 전주곡 정도로 느껴진다. 윤석열 정부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 정부가 작년 말 ‘2023년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6%다. 한국 경제가 2%에도 못 미치는 성장률을 보인 것은 1980년 오일쇼크,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위기 등 4번뿐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로 나타난 수치이고, 그 직전 해 정부가 내건 전망 또는 목표치는 그렇게 낮지 않았다. 2020년은 2.4%, 2009년은 3% 안팎, 1980년은 1∼4%였다. 심지어 한국경제가 역대 최악의 위기를 겪었던 1998년(―5.1%)을 목전에 두고 직전 해 정부가 잡았던 성장목표도 3%였다. 당초 5%를 제시하려 했지만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위해 성장률을 2%로 낮춰야 한다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타협점으로 찾은 것이 3%였다.
비단 수치만의 문제도 아니다. 앞서 4번의 위기는 각각 고(高)유가, 외환 고갈, 미국의 파생금융상품 부실, 코로나 팬데믹 등 분명한 원인이 존재했고 해법 또한 단순했다. 위기 극복은 방법이 아닌 의지의 문제에 가까웠다. 하지만 올해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위기는 미중 디커플링,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식량난, 글로벌 인플레이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 침체 등 원인마저 복합적이다.
윤 대통령이 어제 신년사 대부분을 경제 문제에 할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내놓은 경제 위기 해법은 크게 두 줄기다. 단기적 처방으로는 ‘해외 수주 500억 달러 프로젝트’를 포함한 수출산업 집중 지원을, 중장기적 해법으로는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의 추진을 제시했다.
이 중 각 계층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데다 법 개정까지 필요한 3대 개혁의 경우는 협치, 양보, 타협, 통합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여든 야든 어느 한쪽만의 이념이나 철학을 고집해서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유연성과 실용주의가 결합하지 않고는 해결 불가능한 과제들이다.
노동개혁만 해도, 파시즘과 공산주의 모두로부터 영국을 지켜낸 윈스턴 처칠 총리의 실용주의적 태도는 좋은 참고가 된다. 처칠은 국가 경제를 볼모로 한 파업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도 강경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했지만, 한편으로는 최저임금제도의 강력한 옹호자였고 실업수당의 전신인 실업보험을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최초의 직업소개소를 세우는 데도 기여했다.
윤 대통령 스스로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3대 개혁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가 초당적, 초정파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는 협치를 언급하면서 “거대 야당 인사가 청와대에 올 수 없다고 한다면 내가 밖으로 찾아가 만나겠다. 국회의사당 식당도 좋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집권 3년 차인 내년에는 22대 총선이 있다. 내년 말경이면 임기가 반환점을 돌아 집권 초반에 비해 급속히 힘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협치를 하려고 해도 올해를 넘기면 기회 자체가 소멸할 수 있다. ‘야당 인사’들에 대한 식사 초대가 너무 늦어지면 의미가 없다. 장소도 기왕이면 국회의사당 식당보다는 한남동 관저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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