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보다 ‘젊게’ 살아야 하는 이유[나이와 심리학/한소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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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한소원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한소원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새해가 되면서 다같이 한 살씩 먹는 것. 이는 오랜 세월 동아시아권이 공유한 독특한 전통이었다. 이른바 ‘세는 나이’로서, 태어나면 바로 한 살, 그리고 매년 1월 1일이 되면 한 살씩 누적해 가는 셈법이다. 그러나 중국, 일본, 베트남, 북한 등은 19, 20세기 혁명이나 식민지 시기 등을 거치면서 일찌감치 이를 폐지하고 서구식 만 나이로 연령 기준을 통일했다.

올 6월부터 우리도 만 나이로 통일한다. 각자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1년씩을 꽉 채울 때마다 한 살씩 더 먹는 제도다. 1964년 7월생 가상인물 ‘나이순 씨’를 가정하면 나 씨는 이제 우리 나이로 막 예순이 됐지만 6월에 만 나이가 시행되면 쉰여덟이 된다. 7월에 생일을 맞으면 다시 59세가 된다. 2023년 한 해 동안 세 가지 나이로 ‘널뛰며’ 사는 셈이다. 어쨌든 만 나이 시행으로 한두 살 줄어들게 됐으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다같이 설날 떡국을 먹고 다같이 한 살씩 먹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니까 왠지 섭섭한 마음도 든다.

○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고 있다

우리는 왜 고작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이토록 예민할까. 나이는 정체성의 주요 요소다.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할 때 나이를 빼놓을 수 없다. 나이 정체성은 사회적·문화적 집단 안에서 만들어지고 시대와 문화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이제 노인 또는 청년이라는 호칭은 변화하는 인구 구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개념일 수 있다.

‘노인’을 먼저 보자.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전쟁 직후인 1955년에서 1974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전반기 베이비붐 세대는 법적으로 노인인 65세를 넘겼다. 하지만 자신을 단순히 ‘노인’이라기보다 ‘베이비붐 세대’로 불러주는 것을 선호한다. 한국의 빈곤율이 가장 높던 시절의 노인과 자신들은 전혀 다른 세대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인지 모른다. 청년의 정의도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정부나 지자체의 청년 지원 사업은 청년을 19세에서 34세로 정의한다. 하지만 최근엔 실질적 청년 연령을 이보다 연장된 39세, 또는 45세까지로 보는 경우도 늘고 있다.

사회적 나이의 구분은 ‘고무줄’이라 쳐도 생물학적 나이는 그 한계가 명확하지 않을까. 장수(長壽)의 개념을 보자. 몇몇 과학자들이 인간의 최대 수명은 115세 전후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2016년 네이처지(誌)에 발표했을 때 찬반 격론이 팽팽했다. 장수와 관련한 공식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지는 않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최장수자는 122세 생일을 넘기고 1997년에 사망한 프랑스인 잔 칼망이다. 칼망은 죽을 때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지냈고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칼망보다 더 오래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민등록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국가의 경우라서 증명할 길은 없다. 현재 최고령 기록은 일본 119세, 독일 112세, 미국 119세 등이다.

하지만 장수나 인간 수명의 개념조차도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고대 철학자들 중에는 사람마다 평생의 호흡수나 심장박동수가 정해진 채 태어난다고 믿는 이들도 있었다. 허무맹랑한 것 같지만 이와 유사한 과학적 개념이 있다. DNA의 일부분인 텔로미어(telomere)다. 텔로미어는 한때 노화를 해결할 비밀 열쇠로 기대를 모았다. 현재는 텔로미어의 비정상적 활성화가 노화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암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정도로 알려져 있다. 장수에 관여하는 유전적 요인은 20∼25%에 지나지 않는다.

○ 젊게 사고해야, 삶의 질 높아진다

이처럼 나이에 대한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생물학적인 관점은 한계가 뚜렷하다. 각자가 생각하는 주관적 나이가 중요한 이유다. 주관적 나이는 종종 실제로 전반적인 건강 상태와 기억 능력, 수명까지 더 잘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당신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보다 “당신은 몇 살로 느끼십니까?”가 실질적인 질문일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하버드대의 심리학자 엘런 랭어의 연구에 따르면 이른 탈모, 늦은 출산, 배우자와의 나이 차 등의 요인은 주관적 나이에 영향을 주고 건강과 기대수명에도 차이를 만든다. 즉, 젊어 보이고자 하는 욕구는 단순한 허영심이 아니다. 주관적 나이를 낮추고 건강상의 이로움을 스스로에게 가져다주려는 본능일 수 있다.

특히나 시간에 대한 관점은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에게 그간 살아온 인생 중 어느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지 물어보자. 많은 경우에 지금보다 조금만 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한다. 80대는 70대로, 60대는 5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이다. 노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젊은 시절이 결코 쉬운 시절도 아니고 더 행복한 시절도 아님을, 오랜 삶을 통해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금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과거를 조망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그들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젊기를 희망하는 이유는 현재 중심의 관점에서 삶을 보기 때문이다.

○ 코로나 시기에도 높은 ‘노인 행복지수’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인 2021년 초 발표된 전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는 노인들의 행복지수가 젊은 사람들보다 더 높았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일각에선 예상치 않은 결과라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심리학 연구는 보여준다. 다양한 문화에서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노인은 경험으로 인해 변화에 더 잘 적응하는 능력이 성장했을 수 있다. 코로나 시절에 노인들의 행복지수가 더 높았던 것은 ‘이 또한 지나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리라.

미 스탠퍼드대의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의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보다 더 긍정적인 정서를 많이 경험하고 부정적인 정서를 더 적게 경험한다고 한다. 시간을 보는 관점이 미래보다 현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 삶에서 사회정서적 목표를 우선시하는 성향도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 그렇게 보면 노인이야말로 ‘행복 나이’가 더 젊은, ‘행복 청년’들인지도 모르겠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정된 나이에 관한 시각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공부도 젊어서 해야 한다’는 틀린 말이다.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배워야 한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나이가 들면 쉬어야 한다’도 틀린 말이다. 언제가 젊은 시절이고 언제가 노후인가. 나이에 얽매이지 말고 활발한 신체 활동과 정신적, 사회적 노력을 결합하여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2023년을 맞는 떡국을 한술 뜨며 자문한다.

‘올해는 또 무엇을 배우고 또 어떤 것에 도전해 볼까!’

#새해#나이#젊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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