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구마모토현에 일본 정부가 유치한 대만 TSMC의 반도체 공장 공사가 2년 안에 끝날 예정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속도로는 5년은 족히 걸릴 공사다.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전폭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구마모토 TSMC 공장은 일본 정부가 잃어버린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첫 단계로 자국 내 생산기반 확충을 위해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중국, 미국에만 해외공장을 둔 시스템반도체 1위 TSMC를 끌어들이려고 투자액의 40%를 일본 정부가 지원했다. 작년 초 터를 닦기 시작했는데 내년 말에는 제품이 나온다고 한다. 관계자들이 “이제까지 일본에 없던 속도”라고 할 만큼 절차, 매뉴얼을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달 장비 반입식을 연 미국 애리조나 TSMC 공장도 투자 결정 4년 만에 반도체를 생산한다.
전 세계가 숨 가쁜 속도전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 정부, 국회의 대응에선 긴장감을 찾을 수 없다. 미국은 반도체 시설 투자에 25%의 세액 공제를 하지만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K-칩스법’은 그보다 현저히 낮은 8% 세제 혜택만 주도록 했다. 여당의 20%안, 야당의 10%안보다 낮은 8%로 결정된 이유는 세금이 덜 걷힐 걸 걱정한 기획재정부의 반대 때문이었다. 거센 비판이 일자 윤석열 대통령은 세제지원 추가 확대 지시를 내렸다.
현장에서 기업들이 부닥치는 벽도 적지 않다. 2019년 초 120조 원을 들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겠다고 발표한 SK하이닉스는 용지·용수 문제 해결에만 3년 넘게 걸렸다. 2027년 준공이 목표지만 공사가 지연되는 동안 반도체 경기가 나빠져 사업성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의 우리 기업들은 일분일초를 다투는 글로벌 초격차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기업들이 느끼는 절박함의 반만이라도 공감한다면 지원을 늘리고, 걸림돌을 치워주는 쪽으로 관련 제도를 과감하게 손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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