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목표 있으세요?” 최근 연말 모임에 가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다. 연말연초는 다들 목표를 세우기 좋은 때니까. 나도 신년 다이어리 맨 앞장에 새해 목표를 열심히 쓰곤 했다. 일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를 따라 칸이 64개나 되는 목표 달성표를 그린 적도 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내 개인의 목표보다 고민하게 된 목표가 있다. 회사에서 세우는 연간 목표다.
회사원들은 보통 연말이 되면 내년 회사 목표를 공유받는다. ‘연간 매출 ××억 원’ ‘아시아 시장 점유율 1위’ 같은 목표다. 이런 전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별, 개인별로 세분화된 목표를 정한다. 목표를 정하고 나면 그 목표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로 바꾼다. 이래야 목표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나 같은 실무자가 고민하는 부분도 여기다. 목표 자체보다 ‘목표의 지표화’가 더 까다롭다. 연말 내내 상사와 머리를 맞대고 목표 지표를 몇 번씩 수정할 때도 많다.
목표 지표는 목표가 모호할 때 까다롭다. 목표 지표가 매출이나 영업이익 개선처럼 숫자로 보인다면 적어도 지표를 만들기는 쉽다. 반면 내가 하는 마케팅 일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선호도나 이미지 개선이 목표라면 지표 선정이 곤란하다. 이전 회사에서의 목표 중에는 ‘트렌디한 브랜드 이미지 형성’이 있었다. 브랜드의 트렌디함을 어떻게 지표로 표현할까? 단순하게 접근하면 소비자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해 ‘트렌드 지수’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측정하면 된다. 그 지수는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설문 참여자는 얼마나 믿을 수 있으며, 조사 문항은 얼마나 정확할까?
이렇게 지표 측정이 어려우니 실무자는 타협을 하게 된다. 목표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으며 측정이 쉬운 지표를 대체 지표로 설정한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좋아요 수’나 ‘언급량’으로 선호도를 파악하는 식이다. 대신 이러면 목표를 잊고 지표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자극만 있고 메시지는 없어서 ‘좋아요’만 많이 받은 광고나 상업 콘텐츠가 그 예다. 나도 꼭 달성해야 하는 지표를 위해 지표에 집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적이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그럴 것이다.
지표화를 거부하는 회사원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식이다. 개념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냉정하게 말해 지표에서 벗어난 채 진행하거나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사주(社主)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숙원 사업을 할 때 정도에나 정성 지표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목표와 인과관계가 높은 지표를 찾아서 회사의 동의를 얻는 일 역시 업무의 일부다.
회사 생활을 몇 년 했는데도 새해의 목표와 성과 지표를 만들 때가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양과 질을 모두 반영할 수 있을 만큼 더 발전된 지표는 없을까. 어떻게 하면 지표에 매몰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을까.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의사결정자가 있다면 결과 보고를 받을 때 지표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 목표 자체에도 관심을 가져 주신다면 좋겠다. 실무자도 실무자지만, 결정권이 있는 사람이 목표를 잊지 않으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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