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귀하다[이은화의 미술시간]〈248〉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5일 03시 00분


알브레히트 뒤러 ‘토끼’, 1502년.
알브레히트 뒤러 ‘토끼’, 1502년.
오스트리아 알베르티나 박물관에 가면 토끼 한 마리를 만날 수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것으로, 아마도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일 것이다. A4 용지보다 작은 수채화가 명화라는 사실도 의아하지만, 화가가 왜 토끼를 모델로 삼았는지, 어떻게 살아있는 동물을 이렇게 정교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지가 더 궁금하다.

독일 뉘른베르크 태생의 뒤러는 10대 초부터 자화상을 그릴 정도로 자의식이 분명했다. 24세 때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고향에 작업장을 열었는데,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곧바로 명성을 얻었다. 그가 31세 때 그린 이 그림 속엔 갈색 토끼가 앞발을 모은 채 얌전히 앉아 있다. 크고 긴 두 귀는 위로 쫑긋 세워졌고, 목, 몸통, 뒷다리 털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누웠다. 그 모습이 사진처럼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토끼는 문화권마다 다양한 상징성을 가진다. 강한 번식력 때문인지 서양에서는 주로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 그림의 독일어 제목은 ‘펠트하제(Feldhase)’, 즉 산토끼다. 야생에 사는 동물을 어찌 이리 세밀하게 그릴 수 있었을까? 어쩌면 한 마리를 잡아다가 작업실에서 관찰하며 그렸을지도 모른다. 배경이 생략돼 있지만 토끼 눈동자에 비친 창틀이나 바닥에 진 그림자가 이런 추측에 힘을 더한다. 그림 하단에는 뒤러의 서명을 대신한 모노그램과 제작 연도가 적혀 있어, 수채화지만 습작이 아닌 독자적인 작품임을 보여준다.

화가는 토끼 그림을 통해 뛰어난 기량을 뽐내면서도 작품 번식의 바람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도 이후 뒤러의 작품들은 외국으로 인기리에 복제돼 나가며 화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뒤러는 토끼를 가까이서 오랫동안 관찰했을 테다. 관찰은 관심이다. 관심이 있어야 오래 관찰할 수 있다. 관심은 사랑이다. 이 평범한 토끼를 명화의 주인공으로 만든 것도, 생명에 대한 사랑과 오랜 관찰의 힘일 터. 이 그림의 메시지는 이런 게 아닐까. 모든 생명은 귀하다.

#알브레히트 뒤러#토끼#모든 생명은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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