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새샘]냉온탕 오가는 부동산 정책, 집값 침체 이후에도 대비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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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샘 산업2부 차장
이새샘 산업2부 차장
“이렇게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꺾일 줄은 몰랐습니다.”

최근 만난 정부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지난해 4, 5월까지만 해도 서울은, 그중에서도 강남권 집값은 공고했다. 떨어지는 듯하다 다시 오르는 이전의 패턴을 다시 반복하는 듯했다. 하지만 고금리 앞에 장사는 없었다. 한번 부동산 가치가 하락한다는 인식이 퍼지자 시장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그런데 집값이 치솟던 시기에도 비슷한 말을 자주 들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집값이 다시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공무원 중에도, 부동산 전문가 중에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근 10년간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며 ‘부동산은 끝났다’는 인식이 그만큼 강했다는 의미다.

1년도 되지 않아 시장 침체를 걱정하게 된 국토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사실상 부동산 대책이나 다름없는 내용을 발표했다. 전매제한이 줄어들면 비규제지역 민간 아파트는 입주 전 분양권 전매가 가능해진다. 1년 미만 단기 보유한 분양권 전매에 대해 양도세를 줄여준다는 올해 경제정책방향 내용까지 합쳐지면 청약 신청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일단 당첨되면 전매제한 기간만 채우고 프리미엄 받고 되팔면 되니 정부가 ‘로또 청약’을 다시 보장해준 셈이다. 분양권을 못 팔더라도 분양받은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의무가 없어지니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를 수 있게 된다.

어떤 규제 완화책을 발표해도 시큰둥하던 시장은 대책이 발표된 직후 오랜만에 들썩였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둔촌주공의, 둔촌주공에 의한, 둔촌주공을 위한 규제 완화’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돌았다. 총 1만2032채 규모 매머드급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며칠 전만 해도 부동산 침체로 미계약분이 속출할까 걱정해야 했지만, 이젠 분양권에 프리미엄 수천만 원이 붙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둔촌주공 분양이 실패하면 전체 청약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것이고, 그러면 건설사들 줄도산이 현실화될 수 있으니 ‘극약 처방’을 썼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청약에 당첨돼 입주하고 싶어도 입주할 수 없는 이들의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면이 있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규제 완화가 일단 한번 질러보자며 청약을 넣는 이들의 ‘투기심리’를 지원해주고, 높은 대출금리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고소득자나 현금부자에게 유리하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빚 내서 집 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정부가 결정할 수는 없다. 지금 이렇게 시장이 얼어붙을 줄 몰랐듯, 지난 몇 년간 정부 예측을 벗어나 부동산 가격이 몇 번이나 튀어 올랐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년여 만에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 진이 빠진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다시 부동산 가격이 꿈틀거릴 때를 대비한 대책을 갖고 있길 바랄 뿐이다.

#부동산 정책#냉온탕#집값 침체 이후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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