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도 승려도 되기 싫고 상인이나 농부가 될 뜻도 없다.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거다. 재물 욕심으로 사람 사이에 부대끼며 억지를 부리거나 부정도 서슴지 않는 건 헛짓거리일 뿐이다. 무명의 선비인 시인에게 남은 길은 하나, 과거시험이다. 유능한 인재에게 기회가 부여되는 거의 유일한 사회적 통로다. 하지만 당시 시인은 고약한 상황에 휘말렸다. 신동(神童) 소리를 들었던 그가 고향 쑤저우(蘇州)에서의 향시(鄕試)는 통과했지만 중앙의 회시(會試)에서는 탈락했다. 시험 주관자와 결탁하여 부정행위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옥살이까지 했고 관리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에게 남은 건 독자 노선. 시서화(詩書畵)의 재능을 살려 프리랜서가 되기로 한다. 산수화를 그려 팔되, 죽어라 그림에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아등바등 ‘세상의 때 묻은 돈은 벌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않겠다(不)’는 부정을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한다. 같은 글자의 중복을 피하는 게 한시의 정석인데 이를 과감히 뒤집음으로써 프리랜서로서의 결연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본명보다 당백호(唐伯虎)라는 자(字)로 더 잘 알려진 시인은 시서화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명사대가(明四大家)’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스스로 ‘평생 그림 그리고 시 지으며, 꽃(花)과 버들(柳) 언저리에 내 종적을 남겼지’(‘감회’)라 고백했듯, 화류계를 떠돌며 풍류를 즐긴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만년의 삶은 불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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