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3일 국회를 통과한 세액공제율이 너무 낮아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깎아먹는다는 지적이 빗발쳤기 때문. 다행히 법 통과 일주일여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수정 지시를 내리기는 했지만, 법 개정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양향자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장(무소속)은 “땅에 묻힐 뻔했던 국가 미래가 되살아났다”며 “만약 여야의 정쟁으로 법 통과가 지연된다면 그게 바로 매국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반도체 산업 지원 특별법으로 불리는 ‘K칩스법’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해 12월 23일 법 통과 때 차라리 부결시켜 달라고 했던데….
“특위에서 만든 안은 대기업은 6%→20%, 중견기업은 8%→25%, 중소기업은 16%→30%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4개월여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그날 갑자기 여야가 대기업만 8%로 2%포인트 더 올려주고, 나머지는 전과 똑같은 기획재정부 안으로 합의해 통과시켜 버렸다. 남들보다 더 지원해주고 뛰게 해도 모자랄 판에….”
―실망이 컸나.
“사실상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특위 안을 만들면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과 숱한 논의 끝에 8%로는 도저히 경쟁국들과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입안 과정에서 관련 부처 장관 릴레이 미팅과 8개 부처 장차관 당정협의회 등을 통해 숱하게 세액공제율 확대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세수 부족을 이유로, 그것도 본회의 당일 기습 상정을 하다니…. 솔직히 그때는 이 사람들이 말로만 반도체 산업이 중요하다고 하지 사실은 아닌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지.”
―법 통과 당일까지 전혀 몰랐단 말인가.
“그날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경제포럼에 참석하느라 호찌민에 있었다. 아침에 호텔에서 기조연설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빗발치더라. 지인들과 기자들 전화였는데, 오늘 본회의에 기재부 안이 올라가는데 알고 있었냐는 거다. 내가 되레 되물었다. 논의도 안 했는데 그럴 리가 있냐고. 너무 놀라서 그 뒤 일정을 다 취소하고 부랴부랴 당일 급히 귀국했다. 그리고 본회의에 참석해 이렇게 통과시킬 바엔 차라리 부결시켜 달라고 했다. 그런데 투표가 끝나고 적반하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적반하장이라니?
“특위 위원 중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는 조명희 의원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는데 그날 밤 전화가 왔다. 자기가 국민의힘에서 죄인 됐다고….” (죄인이라니?) “자기가 마치 반도체 산업 지원을 반대하는 사람처럼 몰렸다고….” (당신처럼 그 정도 지원으로는 안 된다는 뜻에서 반대한 것 아니었나?) “내 말이…. 그때 베트남에 조 의원도 함께 갔다가 같이 귀국했다. 오는 길에 내가 법이 이렇게 통과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도 설명을 해서 당당하게 반대표를 던진 건데….”
―그런데 특위 위원장에게 사전에 얘기도 안 해줬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간다.
“법안을 제출한 뒤에 넉 달 동안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다렸다. 소위원회가 구성돼 논의가 시작되면 가서 설명도 하고 설득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언제 논의가 시작되는지 이제나 저제나 기획재정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만 보고 있었는데, 몇 달 동안 아무 이야기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간사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 않나.) “그분은 내가 민주당에 있을 적에도 계속 왜 그렇게 친기업적인 이야기만 하냐고 나를 엄청 비판하던 분이라 묻기가 어려워서…. 그래서 12월이 됐을 때는 ‘올해 안에 통과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기습적으로 할 줄이야.”
―윤 대통령이 일주일여 만에 수정 지시를 했는데, 왜 생각이 바뀌었을까. 혹시 강하게 항의를 했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못 챙겼던 게 아닌가 싶다. 그때 대통령실이 너무 바쁜 데다 예산안, 법인세 문제 등에 초점이 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빨리 수정 지시를 내린 건 정말 잘한 거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대통령이 바로잡아서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을 15%(대·중견기업)로 인상하는 안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으니까. 특위 안(20%, 25%)에 비하면 아쉽기는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까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힘에서는 별 말이 없나.) “지난달 28일인가? 국회 본회의장을 나가는데 주호영 원내대표가 앞에 있었다. 그래서 얼른 다가가 ‘주 대표님!’ 하고 불렀더니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시더라고.”
―일각에서는 세액공제율 확대가 대기업에만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도 한다.
“대기업에 잘해주면 반대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본다는 프레임을 너무 심하게 가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초부자 감세’라며 대기업을 어떻게든 악마로 만들어내려고 애쓰는데… 내 눈에는 참 처량해 보이더라. 저런 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업이 투자를 할까 싶기도 하고. 반도체는 생산량이 많으면 고정비가 하락하는 전형적인 ‘규모의 경제’ 산업이다. 그래서 반도체 산업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대기업이 대표선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걸 대기업에 특혜 주는 것으로 보니 안타깝지. 대기업 투자를 늘릴 수 있는 법 통과를 가장 바라는 사람들이 중견·중소기업 대표들이다. 그들은 대기업의 투자 증가가 반도체 생태계를 활성화시켜 2, 3차 협력사인 자신들을 동반 성장시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관련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고 하던데….
“반도체 분야의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된 게 이미 20년이 넘었다. 그래서 특위에서 수도권 대학은 정원 규제와 무관하게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릴 수 있게 하자는 안을 냈다. 그런데 이게 논의 과정에서 수도권 집중, 수도권 특혜 등의 벽에 부닥쳐 대학이 자체 정원 내에서 조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학내 분란만 일 것 같은데….) “반도체 관련 정원을 늘리고 싶으면 다른 과 정원을 줄이라는 건데 해당 학과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가만히 있을까? 이건 책임을 대학에 미루는 것이다.”
―당신은 광주(서을) 지역구 의원이지 않나.
“지방 의원이 왜 수도권에 혜택을 줘야 한다고 하냐고? 나는 수도권 규제가 오히려 국가 전체 발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재가 부족한데 수도권에 혜택을 주지 않으면, 인재와 기업은 지방 대신 해외로 빠져나가는 게 현실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정원이 50여 명인데 미국 스탠퍼드대는 700명이 넘는다. 반도체 산업은 지역대항전이 아니라 국가대항전이다. 지금 상태로는 인재 확보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수도권 대학 정원 제한을 풀자고 한거다. 그걸 수도권 집중, 지역 소외 문제로만 보니….”
―작년 6월 여당 반도체특위 위원장을 수락할 때 국회 차원의 상설 특위 설치를 약속받았다고 했다.
“그게 첫 번째 조건이었다. 작년 11월에 (여야가) 국회 안에 첨단산업특위를 설치하기로 의결했고, 안도 나와 있는데 국정조사니, 예산안 통과니 해서 정쟁에 빠지는 바람에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한쪽에서 높은 분이 내가 (위원장) 하면 안 만든다고 했다고 하더라.” (무슨 문제가 있나.) “내가 그쪽에 약간 미운털이 박혀 있으니까…. 반도체고 뭐고 내가 하는 건 다 싫어하는 그런 감정이 있어서….” ―다시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야당이 쉽게 합의해 줄까.
“정국 상황을 보면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고 벼를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여야 어느 쪽이든 반도체 산업 지원법을 정쟁의 도구로 쓰는 세력은 언론은 물론이고 국민이 가만두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당신은 그런 사람들을 신매국노라고 불렀던데….
“세계 각국이 반도체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 안에 이상한 프레임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첨단 산업 정책을 정략적 거래로 이용하는 자, 대기업 특혜라며 갈라치기 하는 자, 지역 소외 정책이라며 국토균형발전론을 오남용하는 자 등이다. 마음 같아서는 진짜 ‘매국노(賣國奴)’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표현이 너무 센 것 같기도 하고, 또 이 사람들이 진짜 나라를 팔아먹은 건 아니라서 ‘나라의 미래를 땅에 묻는 것’이란 의미로 ‘묻을 매(埋)’를 썼다. 나라의 미래를 놓고 흥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게 언론과 국민 모두 잘 감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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