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으로 친구들에게 선물을 자주 보내는 사람은 단순히 ‘인싸’를 넘어 은행에서 대출받기도 수월한 시대가 됐다. 요즘 인터넷은행과 카드사들이 다양한 비(非)금융정보를 활용해 고객의 신용도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대형서점 회원 기간이 길수록, 여행 앱을 많이 이용할수록 신용도를 올려준다. 전통적인 대출·카드 정보가 담아내지 못한 고객들의 소비 패턴과 빚 갚을 의지를 읽어낸 결과다.
▷과거 1∼10등급으로 매겼던 개인 신용등급은 2년 전부터 1∼1000점의 신용점수로 변경됐다. 점수에 따라 대출 한도와 금리가 천양지차여서 ‘점수 올리는 법’, ‘1000점 달성 비결’이 다양하게 공유되고 있다. 카드 한도를 최대한 늘려 30∼40%만 사용하고, 신용·체크카드를 함께 쓰고, 아파트 관리비나 공과금을 연체하지 않는 방법들이다. 대출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보다 대출을 제때 꼬박꼬박 갚아온 사람이 더 유리하다.
▷신용도가 곧 돈인 시대에 신용점수를 되레 낮추는 자영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올해 신설된 ‘소상공인·전통시장 자금’ 신청을 앞두고서다. 정부가 신용점수 744점 이하인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에게 연 2%의 낮은 이자로 최대 3000만 원을 대출해 주는 제도다. 은행 신용대출 금리가 연 7%를 넘어선 상황에서 5년 만기에, 연 2% 고정금리로 지원되니 신용도를 일부러 떨어뜨려서라도 정책자금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달 중 신청 날짜가 공지될 예정인데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엔 “현금서비스 두 번 받았는데 며칠 지나야 점수 떨어지나”, “저축은행 소액대출 최대한 받으면 100점 정도 떨어진다” 등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기현상은 정부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직접대출 프로그램을 가동한 뒤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초에도 신용점수 744점 이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연리 1%, 1000만 원 한도의 ‘희망대출’을 개시하자 자발적 저신용자가 늘었다.
▷고물가, 고금리에 극심한 경기 침체까지 겹쳐 자영업자 10명 중 4명꼴로 폐업을 생각 중이라고 한다. 평년과 달리 새해 들어서도 금융권의 대출 문이 열리지 않으면서 정책자금에 기대보려는 절박한 자영업자는 더 많아졌다. 정부의 금융 지원 조치마저 사라지면 자영업자들이 갚지 못하는 부실 위험 규모가 최대 4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제가 나빠질 때 자영업에 가장 먼저 한파가 닥친다. 저신용자와 고신용자를 나누는 차단막 정책 대신 550만 자영업자를 아우를 수 있는 세밀한 지원이 필요하다. 자영업자 잔혹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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