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시모집에서 14개 대학 26개 학과에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모두 비수도권 소재 대학이다. 종로학원이 정시 최종경쟁률을 공개한 4년제 대학 208곳을 분석한 결과 영남권 대학 16개 학과와 호남권 5개 학과 등 26개 학과에 지원한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2020학년도 정시모집에선 지원자 0명이었던 곳이 3개 대학 3개 학과였는데 3년 만에 위기의 학과 수가 8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요즘은 명문 지방 국립대조차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 신입생 수가 입학 정원보다 3만∼4만 명 부족한 현상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미달 규모의 70%는 비수도권 대학에서 나온다. 20년 후엔 18세 인구가 23만 명대로 반 토막 나 정원보다 학생 수가 최대 31만 명 부족할 전망이다. 학생 5명 중 4명이 다니는 사립대는 등록금 의존도가 높아 정원 미달은 대학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입시철이 되면 교수들이 영업사원처럼 고교를 돌고 신입생 전원에게 장학금이나 노트북 지급을 약속하며 신입생 유치전을 벌이는 게 현실이다.
대학의 위기는 2000년대 중반부터 학령인구가 대학 정원을 밑도는 상황이 예견됐음에도 대학 구조조정에 미온적이었던 정부의 책임이 크다. 대학 평가 결과 부실 대학들을 선별하고도 지역구 의원들의 압력에 못 이겨 예산을 지원하면서 다른 대학들까지 동반 부실의 위기로 내몰아왔다. 이제는 수도권에서 먼 대학부터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도미노 식으로 붕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학령인구 급감기가 시작되는 2033년까지 10년간이 대학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대학들은 지방정부와 함께 ‘인재를 키우고-취업과 창업을 도와-정주 인구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도록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 비리 사학은 솎아내되 자생력이 없는 한계 대학들엔 다양한 방식으로 통폐합해 활로를 찾고, 폐교 후 자산의 일부를 국고에 귀속하는 대신 사회복지법인 등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시적 퇴로를 서둘러 열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대학의 위기가 지방 소멸의 위기로 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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