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정형선]건강보험, ‘두 마리 토끼’ 잡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2일 03시 00분


보장성 강화 지속에 재정 우려 커진 건보
본인부담률 조정하고 실손보험 팽창 막아야
간병 서비스와의 연계도 건보의 제1 과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보건의료제도 제1의 목표는 국민이 건강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 국민의 노력과 정부의 정책에는 비용이 든다.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보건의료에 국내총생산(GDP)의 10분의 1 가까운 돈을 지출한다. 건강과 생명에 필수적인 치료를 돈 없다고 안 받을 수는 없다.

치료비에는 ‘재난적(catastrophic)’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보통의 상품은 너무 비싸면 구매하지 않으면 되지만 생명에 필수적인 의료는 비싸다고 안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건강보험은 ‘재난적’일 수 있는 비용을 제도적으로 마련해 누구나 필수 의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그래서 ‘재정안정성’이 요구된다. 더욱이 건보 재원은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내서 어려운 사람의 부담을 줄이게 설계되어 있다. 형평 차원에서다.

‘보장성’은 건강보험에서 커버해 주는 ‘급여’ 항목을 늘리거나, 본인부담률을 낮추는 것이다.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건강보험이 지급한 것이 앞의 경우, 암 치료의 본인부담률을 5%로 낮춘 것이 뒤의 경우다. ‘보장성’이라는 용어가 정책 화두가 된 것은 2005년 참여정부 때 발표된 ‘보장성 강화 대책’부터다. 그 뒤로 보장성 수준을 높이는 것은 진보, 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우선 과제였다. 박근혜 정부는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선택진료비’를 개혁했다. 문재인 정부는 남은 ‘비급여’를 적극적으로 건보화했다. 덕분에 필수적인 의료는 대부분 급여권에 들어와 있다. 지금부터의 과제는 ‘필수성’과 ‘선택성’의 경계에 있는 항목들을 건강보험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로 집약된다. ‘보장성’과 ‘재정안정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첫째, ‘보장성’ 정책의 초점은 ‘정교한 본인부담률 설정’에 맞춰야 한다. 맹장수술처럼 필수적인 것은 건강보험에서 본인부담을 낮춰도 아무 문제가 없다. 공짜라고 수술이 남용될 리 없기 때문이다. 도수치료는 전혀 다르다. 의학적 타당성이 의심되고 선택성이 높은 행위를 ‘급여’화해서 본인부담을 낮추면 필요 이상의 수요가 생긴다. 도수치료가 ‘비급여’로 남아 있는 이유다. ‘차세대염기서열 유전자패널검사’나 특정 ‘심전도 검사’는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되어 ‘급여’화하지만, 선택성이 커서 본인부담률을 50∼90%로 높게 한다. ‘가격 의식적’ 선택을 해달라는 건강보험의 요구다. 건강보험의 새로운 급여화 항목은 대부분 ‘선별급여 혹은 예비급여’ 수준의 높은 본인부담률을 적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디지털 치료’같이 선택성이 높고 초기의 가격 설정이 어려운 경우는, 건강보험에서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고 전체 가격은 시장 기전을 활용하는 방식(extra-billing)이 어울린다. 이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강조한 ‘지불방식의 정교화(sophisticated payment)’다.

둘째, 실손보험의 본인부담률을 50% 이상으로 강제화해서 건강보험 교란을 막아야 한다. 건강보험이 애써 설정한 ‘본인부담’을 ‘실손보험’이 지급해 버리면 어찌 될까? 실손보험 가입자는 급하지 않은 의료 이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각종 검사에서 이러한 ‘도덕적 해이’가 많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에서 급팽창한 실손보험은 사실 우리 의료제도와 건강보험제도의 골칫덩이였다. 실손보험이 ‘가입자의 실손보험료’ 부담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전 국민의 건강보험료’도 높인다. 건강보험에서 ‘눈의 계측검사’를 커버해 주니, 실손보험에서 노안수술의 비급여 가격과 건수가 함께 뛰었다. 실손보험료가 높아지고 덩달아 건강보험료도 인상 압박을 받는다.

셋째, 병실에서 보호자의 숙박을 금하고 간병비 부담을 ‘사회화’해야 한다. 인구고령화로 간병에 대한 수요는 급팽창하고 있다. 병실에서 보호자가 숙박하는 원시적인 상황은 선진 한국의 격에 맞지 않는다. 일본이 병상에서 ‘보호자 금지’를 강제한 것은 30년 전이다. 지금의 한국보다 인구 고령화율도 낮았고, 소득 수준도 낮던 시절이다. 우리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라는 애매한 이름의 보험재정 낭비만 계속하고 있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확대해 가야 한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간병 인력의 문제도 포괄적으로 풀어야 한다. 급성기 항목의 급여화가 거의 완성된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간병의 사회화’다. 간병 인력의 확보, 간병 재원의 방식, 서비스와 재원의 연계는 우리의 건강보험이 장기요양보험과 함께 풀어내야 할 제1의 현안이다. 쇠도 달구어졌을 때 다듬어야 한다. 마침 건보 재정도 20조 이상의 누적 흑자다.

#건강보험#보건의료제도#보험재정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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