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3’이 8일(현지 시간)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당초 올해 CES에선 글로벌 경기 불황의 여파로 눈에 띄는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생존을 위해 업의 한계를 넘나들며 몸부림 중인 기업들의 노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과거의 CES는 현재의 사업 영역에서 누가 더 우수한 기술과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였다. 가전제품 박람회로 시작한 행사다 보니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제품과 기술을 뽐내는 기업들이 CES의 주인공이었다.
인공지능(AI)과 IT의 발달로 산업 간 융·복합이 본격화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몇 년 전부터 모빌리티와 로봇 기술로 기업 간 영역 파괴의 장을 선보였던 CES는 올해 들어선 기존 산업에 주력하고 있는 기업들이 오히려 시대에 뒤처져 보일 만큼 혁신과 영역 파괴가 ‘필수’가 됐다.
소니는 첫 전기자동차 ‘아필라’를 공개했고 카메라 업체 니콘은 산업용 로봇팔을, 화장품 업체 로레알은 휴대용 메이크업 로봇을 공개했다.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글로벌 IT 기업은 자동차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의지를 엿보였다.
노동과 교육 등에서 이용자의 경험을 확장하기 위한 기술도 눈길을 끌었다. 세계 1위 중장비 업체 캐터필러는 타이어 크기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100t 규모의 자율주행 트럭을 선보여 물류 분야의 격변을 시사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증강현실(AR)을 이용해 자동차나 건물의 내부 구조를 확인하는 원격 기술자 교육 시스템을 내세웠다.
국내 업체들의 도전도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본 전시관에서 ‘초연결’을 강조하기 위해 신제품들과 기존 제품을 일반 관객이 알아볼 수 없도록 뒤섞어 전시했다. LG전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부스를 꾸렸다. SK는 친환경을 콘셉트로 그룹의 미래 기술을 한자리에 선보였다.
올해 CES에서 유독 업종 간 장벽 파괴가 도드라져서인지 국내 기업들이 선보인 ‘미래’에 대한 평가는 묘하게 갈렸다. “이미 세계 최고 기술과 제품을 가지고 있는 만큼 지속가능성과 이용 생태계 등에 집중한 게 오히려 선도적”이란 시선과 “딱히 눈에 띄는 기술이나 제품이 없는 반면 메시지가 추상적이다”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기업 내부에서도 “우리 부스가 너무 콘셉트에만 집중한 것 같다”, “기존에 해오던 걸 계속 강조하는 수준에 머문 것 같다”는 비판적인 자기 평가도 흘러나왔다.
각자 내세운 건 달랐지만 기업들이 바라는 건 결국 하나다. 전례 없던 경제 위기가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수요를 일으켜 기업을 지탱하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CES를 통해 확인했듯 외국 기업들은 가보지 않은 길에서, 국내 기업들은 지금까지 갈고닦아 온 영역에서 승부수를 걸었다. 승부의 결과는 머지않은 미래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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