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캐나다·멕시코 3국 정상들이 10일 북미 지역 내에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같은 핵심 산업의 기반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북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핵심 분야 생산시설을 아시아에서 북미로 옮기겠다는 뜻이다.
미 정부가 이웃 국가들과 탈(脫)아시아 공급망 동맹을 선언한 가운데 애플은 한국 부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로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애플은 디스플레이를 자체 개발해 이르면 내년 말 애플워치에 사용하고, 적용 범위를 차츰 아이폰, 아이패드 등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애플에 디스플레이를 공급해온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기업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이폰 최신 기종의 패널 90%가량을 책임졌던 두 기업에는 날벼락이나 다름없다.
10년간 선두를 지켜온 한국 디스플레이업계는 이미 중국산 저가 물량 공세에 밀려 지난해 글로벌 매출 1위를 뺏겼다. 미래 먹거리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도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점유율은 중국 업체에 밀려 떨어지는 추세다. 한국의 주력 업종들이 중국의 대공세는 물론이고, 이제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는 미국의 ‘견제와 이탈’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문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일시적이거나 단편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자국 제조업 부활을 위해 여야 정치권과 정부, 기업이 한목소리로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외치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의 탈아시아, 탈한국 움직임은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넘어 다른 제품에도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중국대로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어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갈수록 거세지는 자국 중심주의와 보호주의 조류는 삼성·LG 같은 글로벌 기업도 홀로 헤쳐 나가기 힘들다. 최근 정부가 대기업의 반도체·배터리 등 시설투자에 세액공제율을 15%로 높이고 투자 증가분에 추가 공제까지 주기로 했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전략산업에 대한 더 과감한 지원과 규제 혁파가 필요하다. 국회도 ‘메이드 인 코리아’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적극 입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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