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충북 제천에 있는 친구네 집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 친구네는 우리 집으로 오고 우리 식구는 그들 집으로 가고. 서로의 집을 바꿔 지내며 달콤한 사랑도 만난다는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같은 이벤트로 오랫동안 기약하던 약속이었다.
재작년 12월에도 그 집에서 소소하게 연말 모임을 했던 터라 그곳에 간다는 것이 무척 편안하고 친근하게 와닿았다. 그때 나는 뭐가 그리 피곤했는지 아내와 친구 부부가 한쪽에서 술 한 잔을 걸치고 밀린 안부를 나누는 사이 비실비실 졸다 이내 거실 바닥에 누워 잠까지 잤다. 그 집은 내게 그만큼 정겹고 따뜻한 곳이다.
1년 만에 찾은 집은 그대로였다. 아니,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단출한 주방 살림을 포함해 새로 들어온 가구나 전자 기기는 보이지 않았다. 목까지 편안하게 받쳐줘 내가 좋아하는 이케아 안락의자도 그 자리에 그대로였다. 창가의 화분마저 1년 전과 똑같은 것 같았으니 절로 마음이 푸근해져 짐 가방을 내리면서부터 “좋다, 좋아”를 연발했다.
딱 하나, 새로 장만한 것이 있긴 했다. 오디오. 휴대전화에 있는 음악도 손쉽게 연결해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중심의 오디오로 스피커 출력도 짱짱해 볼륨을 크게 키워 놓고 이 음악 저 음악 골라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는 청각의 예민함과 기쁨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귀가 즐거우면 영혼까지 금세 즐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친구 어머니가 다시마를 넣어 담그셨다는 김장 김치에 라면을 나눠 먹고 그들은 곧 우리 집으로 떠났다. 친구들이 떠난 집을 이곳저곳 둘러보고, 다용도실에 있던 과자 맛동산을 꺼내 먹고, 동네 고양이 무리에서 대장이라는 ‘하옹이’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낮잠도 자면서 나른한 시간을 보냈다. 남향으로 길고 큰 창이 있는 그곳에는 빛이 종일 깊고 두껍게 들어와 보일러를 틀 필요가 없었다. 그 볕을 이불 삼아 오래오래 멍하게 있었다. 바깥의 소나무와 행인들을 구경하다 무심코 집 안을 둘러보면 그림 한 점 없이 넓고 깨끗하고 흰 벽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장식의 역사는 피곤함과 상실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공간은 나름 공평한 것이, 얻는 풍경이 있으면 잃는 풍경도 생긴다. 이를테면 빈 벽. 예전에는 빈 벽만 보면 채울 생각부터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비어 있는 채로 넉넉한 편안함을 오랫동안 즐기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공간은 비어 있을 때도 힘이 있다. 마음처럼. 올 연말에도 빈 벽 많은 그곳으로 가 부드럽고 뜨끈하게 풀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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