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부는 어제 도쿄에서 국장급 협의를 열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우리 정부가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일본 피고기업 대신 피해자지원재단으로부터 판결금을 받는 ‘제3자 변제’ 방식을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으로 사실상 공식화한 이래 처음 이뤄진 외교당국 간 대면 협의다. 우리 측은 이 자리에서 “사과와 기여 측면에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있어야 우리 독자적 해법도 발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지난주 제시한 강제동원 배상 해법은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차선책이라고는 하지만 일본 정부의 사과도, 피고기업의 참여도 전제되지 않았다. 다만 일본 측의 자발적 성의 또는 기여를 기대하고 있다. 당장 피해자 측은 “결국 일본에 모든 면죄부를 줬다”고 반발하고, 야당도 “일본 눈치만 본 굴욕 외교”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한일 간 외교적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그간 실패한 한일 합의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늦어도 올해 봄까지는 한일 공동의 해법을 발표할 방침이라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통한 정상회담 개최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날로 고도화하면서 한미일, 한일 안보협력이 절실한 터에 한일관계가 과거사 갈등에 발목을 잡혀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한일 정·관계 교류 과정에서 한국이 먼저 적극 나서면 일본도 자연스럽게 호응하는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이심전심의 공감대가 이미 양국 간에 형성됐다는 기류도 읽힌다.
일본 정부도 한국 측 해법에 조심스럽게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방미 회견에서 “가능한 한 빨리 한일 현안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여론 동향을 살피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일본이 화답할 차례다. 군사력 증강과 미일동맹 확대를 통해 인도태평양 안보 현안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꾀하는 일본이다.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사과와 반성도 없이 힘과 목소리만 키우려 한다면 주변국의 더 큰 경계와 의심만 살 뿐임을 알아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