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동부 신흥 제조업 벨트 지역에 한국 대표 기업들의 생산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현대자동차 전기차 공장,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배터리 공장이 착공돼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첨단산업 생산기지를 미국 내로 끌어들이려는 조 바이든 정부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에 적응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노력이 숨 가쁘게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가 텍사스주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 반도체 공장은 올해 안에 완공될 것이라고 한다. 재작년 말 170억 달러를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한 후 2년도 안 돼 공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현대차는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을 세우고 있다. SK온이 포드와 합작해 켄터키주에 짓는 공장은 내후년부터 전기 픽업트럭에 탑재될 배터리 생산을 개시한다. 한 해 세탁기 120만 대를 생산하는 LG전자 테네시주 공장은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로 제조업 혁신을 이끈 공장에 세계경제포럼(WEF)이 부여하는 ‘등대공장’에 선정됐다.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이 급물살을 탄 것은 미국 정부 영향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 반도체, 배터리 분야 한국 대기업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투자를 독려했고, 미국 각 주와 도시들은 막대한 세제 혜택 등을 제시하며 유치 경쟁을 벌였다. 공장이 들어선 남동부 도시들은 공장 앞에 ‘삼성하이웨이’ ‘LG하이웨이’까지 깔아주며 지원 약속을 지키고 있다.
우리 제조업체의 대미 투자 확대는 투자 경쟁에서 밀리면 불과 몇 년 뒤도 예상하기 힘든 글로벌 생존게임의 결과다. 파운드리 1위 기업인 대만 TSMC가 미국,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배터리 1위 중국 CATL이 미국에 합작공장을 세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차세대 산업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초격차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미국, 유럽연합(EU) 각국이 앞다퉈 한국 기업에 공장을 지어 달라고 구애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상 최고로 위상이 높아진 한국 기업들도 성패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글로벌 산업계는 자국 우선주의, 자유무역 퇴조라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작은 방심으로도 선두권에서 밀려날 수 있다. 세계무대에서 뛰는 우리 기업들이 첨단산업을 선도하는 등대 역할을 지속할 수 있도록 인재 공급, 규제 완화, 경제외교 등 할 수 있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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