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욱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분노를 격하게 발산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생각해볼 문제다. “저 사람은 성격이 욱할 때가 많다”는 말을 듣는다면 분노를 자주 격하게 발산하는 경우일 것이다. 속에서 불끈 화가 올라올 때마다 버럭한다면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하면 화를 식힐 수 있을까.
수박을 살 때 잘 익었는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하는가. 나는 무조건 두들기고 보는데, 그래도 긴가민가할 때가 많다. 생긴 것만 봐서는 속을 알 수 없는 게 수박이다. 난데없이 수박 이야기를 꺼낸 건 화날 때 수박을 떠올리는 게 도움이 돼서다. 나를 화나게 한 그 사람 속을 알 수 있을까. 수박 속도 모르는데 하물며 사람 속은 어찌 알랴. 수박을 떠올리면서 심호흡을 한 뒤 ‘나는 저 사람 속을 모른다’ 하고 되뇌어 보자. 그러면 욱하고 올라오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에 대해 미심쩍은 점을 선의로 해석해보자. 속는 셈 치고 한번 믿어보는 거다. 미심쩍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확증이 없다면 상대에게 유리한 쪽으로 봐주라는 얘기다. 타인, 심지어 가족조차도 진심을 알 순 없다. 저마다 처한 상황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박처럼 사람 속도 ‘모른다’가 기본값인 것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간혹 위험하게 끼어드는 차를 만난다. 그럴 때 갑자기 욱하겠지만, 혹시 아이가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이유 없이 짜증을 낼 때도 내가 모르는 상황이 있다고 생각하면 거꾸로 솟던 피가 조금은 가라앉을 것이다. 아이를 키울 때도 ‘일부러 부모 골탕 먹이려고 저러는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는데, 아직 아이의 발달 상태가 그 정도라고 생각하자.
이 수박요법의 핵심은 열린 마음이다. 내가 모르는 상황이 있을 수 있고, 그 사람의 의도는 나쁘지 않을 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박요법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바로 판단하는 것이다. 내 수박밖에 모르면서, 다른 수박도 속이 비슷할 것이라고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자신이 아는 세상을 전부로 여기고, 남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수박요법을 익히면 누군가 나를 욱하게 했을 때 화가 쑥 가라앉을 것이다. 욱하는 빈도가 줄어들면 정신 건강뿐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또 상대방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사고범위가 확장돼 공감 능력이 높아진다. 공감 능력은 현대 사회에서 필수 능력 중 하나다. 좀 더 이해하려 애쓰면 상사에게 모진 말을 들어도 의도를 확대해석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오늘부터 시작해보자. “나는 수박 속을 모른다.”
※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2020년 10월 유튜브 채널 ‘닥터지하고’를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와 명상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1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17만1000명이다. 에세이 ‘마음이 흐르는 대로’와 육아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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