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유난히 좋아하는 게 있다. 남들이 볼 땐 좀 뜻밖일지라도 말이다. 얼마 전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에게 그것은 빨간 구두였다. 교황이 전통적으로 신는 색깔이기도 했지만 예수가 흘린 피를 상징한다고 해서 평소에도 좋아했다고 한다. 영화 ‘두 교황’에서도 이 신발을 볼 수 있는데 얼른 눈에 띄지는 않는다. 당시 추기경이었던 현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화가 워낙 집중력 있게 전개되어서다.
그런데 교황 자리에서 물러난 후, 그는 그 좋아하던 빨간색 신발을 검은색으로 바꿨다. 선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좋아하던 색깔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데, 단순히 자리에서 물러나서였을까? 이제는 알 길이 없지만 짐작이 가는 건 있다.
예전 미국의 베스트셀러 중에 ‘무쇠 한스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독일의 그림 형제가 수집한 오래된 동화를 기반으로 한 책인데 내용은 이렇다. 옛날 어떤 왕이 큰 숲으로 사냥꾼들을 보냈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한 사냥꾼이 그 이유를 밝혀내는데, 숲속 호수에서 나온 웬 커다란 팔이 같이 있던 개를 끌고 가자, 사람들을 동원해 물을 퍼냈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누군가 있었다. 무쇠 같은 몸과 털이 덥수룩한 야성인(wild man) ‘무쇠 한스’였다. 그는 곧바로 왕궁 내의 우리에 갇히는데, 몇 년 후, 어린 왕자가 갖고 놀던 공이 우연히 이 우리로 들어가면서 진짜 얘기가 시작된다.
공을 돌려줄 테니 자신을 풀어 달라는 제안에 왕자는 왕비의 베개 밑에 있던 열쇠를 훔쳐 공을 되찾긴 하지만, 곧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처벌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쇠 한스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고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엔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인데, 시인이자 작가인 로버트 블라이는 여기에 단순한 동화 이상의 어떤 것, 그러니까 부모의 세계에서 벗어나 독립된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는 숨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왕자가 타는 말의 색깔도 그렇다.
왕자는 처음에는 붉은 말을, 다음에는 흰 말을, 나중에는 검은 말을 타는데, 붉은색은 젊은 시절의 활발한 감정과 에너지를 뜻하고, 흰색은 자신의 일과 규범에 따르는 삶을, 그리고 검은색은 성숙을 의미한다고 블라이는 해석한다. 위대한 일들을 했던 링컨 대통령이 죽기 전 검은색 말을 탄 게 우연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베네딕토 16세의 검은색 신발도 그럴까? 그 또한 독일인이니 무쇠 한스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수 있다. 가톨릭의 미래를 위해, 흔치 않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퇴위한 것도 그렇고, 그 후 조용히 살아온 지난 10년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신발을 보면 신발 주인의 성향과 성격을 90%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또 궁금해지기도 한다. 지금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은 나의 무엇을 나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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