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개월간 서울 아파트 전세거래 5건 중 1건이 2년 전 계약 때보다 낮은 가격에 이뤄졌다.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리지 않으면 세입자를 못 구하고, 기존에 살던 세입자에게는 보증금 일부를 돌려줘야 하는 역(逆)전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출을 받아 ‘갭 투자’로 집을 사둔 임대인들이 줄어든 전세금을 벌충할 방법이 없어 “더 살아 달라”고 세입자에게 읍소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지난 3개월간 이뤄진 역전세 거래 건수는 5050건이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아파트 전세거래 2만3667건 가운데 21%가 2년 전보다 전세금을 낮춰 계약됐다. 역전세 비중이 높은 곳은 강서, 강동, 양천, 강북구 등이었지만 주거지로 인기가 높은 강남권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84㎡짜리 아파트 전셋값이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3억∼4억 원씩 폭락한 사례들이 속출한다.
평상시라면 전셋값 하락은 세입자가 반길 일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너무 급하게 떨어질 경우 이직, 자녀교육 등의 이유로 이사하려고 해도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고 발이 묶이는 일이 벌어진다. 은행 대출은 까다롭고, 금리까지 높은 상황에서 집주인들도 떨어진 전세금 수억 원을 단기간에 마련할 길이 마땅치 않다. 최악의 경우 세입자는 경매로 집이 팔린 뒤에야 전세금을 회수하게 되거나 일부 또는 전부를 떼이게 된다.
게다가 역전세난은 더 심화할 전망이다. 전세사기 공포 때문에 보증금을 떼일 염려가 적은 월세를 택하는 세입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나온 ‘1·3 부동산대책’에 따라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에 집주인이 실제 거주해야 하는 의무가 없어지면 새 아파트 전세물량이 더 늘어나게 된다. 상반기에 급증할 신축 아파트 입주도 전셋값 하락을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역전세난으로 인한 세입자 피해를 막기 위해 세심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서민, 청년 세입자 가구가 가장 큰 재산인 전세금을 날리는 일이 없도록 정책기관의 보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아파트보다 높아 ‘깡통전세’가 많이 발생하는 다세대·연립 주택에 대해서는 한층 보강된 세입자 보호 방안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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