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반값 등록금, 이주호 장관이 결자해지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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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도입해 11년간 대학 황폐화
포퓰리즘 폐단 없애고 대학 살려야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교육감 직선제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도입돼 진보 진영의 정책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도 여당과 합의안을 만들 정도로 직선제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명분은 주민 대표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였지만 “교육은 선거하면 보수가 이긴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진보 색채가 짙은 반값 등록금도 실은 보수의 정책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한나라당 의원 시절이던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학 등록금을 절반으로’라고 제안한 후 2012년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돼 실행했다. 2011년 등록금 기준으로 가정 형편에 따라 학생 부담을 절반으로 줄이는 정책인데 2015년 그 목표에 도달했다. 4년제 국공립대 학생들은 등록금의 35%인 148만 원을, 사립대 학생들은 53%인 397만 원을 낸다(2021년). 월평균 12만∼33만 원이면 초등학생 사교육비(40만 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덕분에 봄이면 등장했던 등록금 투쟁 ‘춘등투’가 사라지고 대학 진학률도 74%로 높아졌다.

하지만 긍정적 효과는 여기까지다. 우선 수혜 대상이 넓어 교육 재분배 효과가 미미하다. 지난해 월 소득이 1024만 원이 넘는 소득분위 8구간 학생이 최고 350만 원의 국가 장학금을 받았다. 고졸자가 낸 세금으로 중산층 자녀의 대학 학비까지 지원하는 것이 공정한가.

대학 문턱이 낮아진 대신 교육의 질이 떨어진 건 더 큰 문제다. 정부가 반값 등록금을 위해 대학에 등록금 동결과 장학금 확충이라는 ‘자구 노력’을 강요한 결과다. 여기에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충격까지 더해졌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매년 줄어드는 등록금 수입으로 장학금을 늘리다 보니 연구비 실험실습비 도서구입비가 2011년에 비해 22%나 급감했고 강좌 수도 10% 줄었다. 인력 유출도 심각하다. 거점 국립대 조교수 연봉이 5000만 원으로 삼성 2년 차 전문 연구원의 절반도 안 된다. 그나마 정부의 인건비 지원을 받는 국공립대는 형편이 낫다. 지방 사립대는 최저 시급 수준인 월 200만∼250만 원을 받는 교수가 수두룩하다고 한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딴 졸업장이 제값을 할 리 없다. 고졸자의 고용률은 7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5%포인트 낮은데, 대졸자로 올라가면 그 차이는 7.3%포인트로 벌어진다. 고졸자가 100만 원 벌 때 OECD 대졸자들은 144만 원, 한국은 138만 원을 받는다. 그저 헐값에 졸업장만 내어주는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애초에 고등교육의 정책 목표를 대학 경쟁력 강화와 교육 기회 확대에 두었어야 했다. 부실 대학은 퇴출시키되 살아남은 대학엔 자율을 보장해 혁신을 장려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 정부 지원을 집중했더라면 대학은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대학 졸업장은 튼튼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됐을 것이다. 정부가 지원은 제대로 않으면서 300만 대학생 표심을 의식해 고소득층에까지 선심 쓰다 공멸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교육감 직선제 채택에 참여했고, 반값 등록금 도입은 주도했다. 교육감 직선제가 초중고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든 데 책임이 있고, 반값 등록금이 대학을 황폐화시킨 데는 더 큰 책임이 있다. 정부는 교육감 직선제 대안 찾기에 나섰지만 반값 등록금은 손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오랜 기간 보수 정부의 교육 정책을 이끌어온 이 장관이 보수 진영의 실책을 바로잡고 아사 직전의 대학을 살려내는 책임을 다하기를 바란다.

#반값 등록금#이주호 장관#결자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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