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당시 우리 군의 3대 긴급 정보전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부대가 무인기 침범을 탐지하고도 각급 부대 간 긴급통신망인 ‘고속지령대’는 물론이고 대응작전 실행을 위한 ‘고속상황전파체계’, 정보를 실시간 분석·대응하는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까지 가동하지 않은 채 유선전화로 상황을 공유하고 상급부대에도 유선으로 보고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수도방위사령부와 인접 군단 간에는 지휘통제정보체계(C2A)가 두절돼 있어 수방사가 자체 포착할 때까지 침투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무인기 침범 한 달 만인 어제 군 당국이 공개한 전비태세검열 중간 결과는 그간 드러난 우리 군의 무능과 말 뒤집기에 더해 참담한 대응 실패를 거듭 확인해준다. 3대 정보시스템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것은 초기 상황 판단의 잘못 때문이었다고 군 당국은 밝혔다. 무인기 항적을 포착한 육군 1군단의 실무자는 이를 ‘긴급 상황’으로 판단하지 않고 ‘수시 보고’ 대상으로 분류했다. 새 떼로 밝혀질 가능성 때문이었다지만 이로 인해 고속지령대 등 첨단 정보시스템은 가동되지 않았고 일선 부대부터 지휘부까지 유선전화로 상황을 공유했다.
군은 시스템 장비 고장 같은 물리적 문제는 없었고 ‘판단의 문제’였다며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일선 부대가 초동 단계에서 범한 판단 착오의 문제라고 쉽게 넘길 일은 아닐 것이다. 군 전반에 걸친 의식의 문제, 조직의 문제가 아니었는지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그런 판단 실책의 근저에는 ‘설마 별일 있겠느냐’는 느슨한 경계의식과 ‘괜히 법석 떨지 말자’는 무사안일주의, 적극적 대응 의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관성적 관료주의가 깔려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결국 총체적 대응 실패로 나타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선 부대가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도 긴급 상황 발령을 주저하게 만드는 심리적 압박이 있었다면 그것은 군 조직과 문화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교묘한 도발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런 타성에 빠진 군대다. 비상한 경계 태세와 신속한 대응 역량을 짓누르는 유·무형의 장애 요인부터 찾아내 전면 쇄신을 꾀해야 한다. 군 전반에 걸친 정신 재무장과 함께 지휘라인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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