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6일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나 “대공(對共)수사는 해외와 연결돼 있어서 국내 경찰이 대공 수사를 전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업무적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내년부터 경찰로 넘어갈 경우 우려되는 문제에 대해 다각적으로 보완책을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은 예정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 발언은 최근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민노총 핵심 간부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들은 북한 지령을 받고 민노총 내부 3곳에 지하조직 하부망을 구축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 발각된 간첩단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국내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민노총을 집중적으로 포섭하려 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고 당국은 보고 있다.
대공수사는 특성상 5∼10년, 또는 그 이상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번 국보법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용의자를 내사·추적하기 위해선 중국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 일대를 아우르는 해외 정보·수사망을 가동해야 한다. 해외 정보기관과 민감한 정보 교류가 가능한 국정원의 축적된 수사 역량이 필요한 이유다. 상대적으로 대공수사 경험이 일천한 경찰이 이런 복잡한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국정원은 대공수사권 복원이 어렵다면 사이버 공간 등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정보 수집을 위해서라도 감청과 통신조회 등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간 영역에 대한 권한 확대는 민간인 사찰 등 국정원의 어두운 과거를 연상케 한다. 대공수사를 빙자한 무분별한 도·감청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등은 국정원의 흑(黑)역사였다. 대공수사의 빈틈을 메우는 일은 서둘러야 하지만 국정원이 과거로 원상 복귀해서는 안 된다.
대공수사권을 놓고 여야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 “공안통치 부활”이라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대공수사를 둘러싸고 여야가 지루한 정쟁을 벌일 일인가. 서로 한 발씩 물러서서 대공수사 보완책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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