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끌어다 패닉바잉에 나설 만큼 주택시장이 들끓었을 때 2030세대 사이에서 ‘청무피사’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다. ‘청약은 무슨, 피 주고 사’의 줄임말이다. 청약가점이 낮은 20, 30대는 바늘구멍 같은 청약 대신 차라리 프리미엄(웃돈)을 주고 아파트 분양권이나 입주권을 사는 게 낫다는 뜻이다. 청무피사에 나선 청년, 신혼부부 덕에 2, 3년 전 미분양이 쌓였던 수도권 일대 아파트들은 빠르게 남은 물량을 털어내며 최고가를 갈아 치웠다.
▷하지만 청무피사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프리미엄은커녕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분양권·입주권을 내놓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가장 먼저 마피가 나온 건 수백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보였던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이다. 분양·대출 규제 같은 겹겹의 주택 규제를 피할 수 있어 틈새 투자처로 각광받던 상품들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도시형생활주택에선 분양가보다 1억∼2억 원씩 낮춘 마피 매물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비(非)아파트와 지방 부동산 시장을 거쳐 서울 아파트에서도 마피가 속출하고 있다. 입주를 1년 남긴 송파구 오금동의 A아파트는 전용면적 65㎡ 매물이 13억 원대에 나와 있다. 분양가보다 1억5000만 원가량 낮다. 지난해 초 2600 대 1의 경쟁률로 청약을 마쳤을 때만 해도 웃돈이 1억 원 넘게 붙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불과 2년 새 마피가 됐다. 서울에서도 입지가 떨어지거나 단지 규모가 작은 아파트는 더 심각하다. 강북구 수유동 B아파트의 59㎡는 초기 분양가보다 2억5000만 원가량 싸게 나왔지만 여전히 거래가 안 된다.
▷집값 하락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전셋값도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억 소리’ 나는 마피가 쌓이는 추세다. 입주를 앞두고 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워진 데다 대출이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집주인들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분양권을 처분하려는 것이다. 고금리 한파로 전세를 찾는 사람이 끊기고, 세입자가 면접 보듯 집주인을 심사하는 역전세난이 마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마피 매물이 안 팔리는데 올해 전국에서 35만 채 넘는 아파트 입주 물량이 쏟아져 역전세난과 마피 증가세가 동반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특히 강남 4구의 입주 물량은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많아 전세계약을 갱신하려면 집주인이 5억 원 안팎의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됐을 때 마피 매물을 브로커를 통해 넘기는 탈법이 성행한 적 있다. 역전세든, 마피든 그 고통이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점에서 더 세심하고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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