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유영]전세사기단에 멍석 깔아준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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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사기’는 정책 실패의 산물
전세사기 땔감 된 전세대출은 손봐야

김유영 산업2부장
김유영 산업2부장
전국 각지에서 ‘빌라왕’, ‘빌라의 신’, ‘건축왕’ 등을 앞세운 빌라사기단 행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집값 하락세가 가팔라지며 빌라 위주로 깡통전세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많게는 3000여 채의 주택을 굴리며 세입자에게 전 재산일 수 있는 전세금을 떼먹는 이들이다. 경찰과 검찰은 전세사기단을 대대적으로 수사해 처벌하고 정부는 세입자 전세금을 상습적으로 떼먹는 악성 임대인 명단을 공개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과연 전세사기가 집주인이 악하면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이들을 엄벌하면 전세사기가 박멸될까. 꼭 그렇진 않다. 빌라 분양업자와 브로커, 중개업소까지 가담해 조직적으로 이뤄진 전세사기는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맞물리며 나타난 결과로 보는 게 맞다.

전 정부 들어 시장을 거스르는 대출 및 세금 규제와 임대차법의 무리한 시행으로 아파트 매매가뿐 아니라 아파트 전세가까지 폭등했다. 그 결과는 익히 아는 바다. ‘영끌’마저 못 한 사람들은 빌라 전세로 쏠리며 도심 빌라 전세 수요가 급증했다.

이들을 등치는 전세사기에 빌미를 준 건 역설적으로 등록 임대사업자 제도였다. 2017년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와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혜택을 줬다. 민간 임대주택을 늘리려는 취지였지만 문제는 과도한 투기 방지 장치는 제대로 마련 못 한 채 주택을 많이 보유해도 세금과 대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끔 판을 깔아준 것. 나중에 아파트에 한해 임대사업자 혜택을 사실상 없앴지만 빌라는 유지했다.

물론 이게 전부라면 전세사기는 곪아 터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빌라 전세 수요가 높아지는 시기 전세자금대출이 전세사기의 땔감이 되어 줬다.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의 보증 덕에 대체로 집값의 80%, 많게는 90%까지 전세대출이 나왔다. 당시 주택담보대출을 조인 것과 달리 전세대출은 규제의 무풍지대에 있었다.

특히 빌라는 가격이 표준화되어 시세 책정이 비교적 쉬운 아파트와 달리 시세 책정조차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매매 호가를 부풀려 부르는 게 값(감정가)인 경우가 적지 않아 전세대출이 매매가보다 많이 나오는, 태초부터 깡통전세인 경우가 허다했다. 전세사기단은 세입자에게 “이자 지원금을 주겠다”며 전세대출을 받으라 꼬드겼고 물정 모르는 세입자들은 이를 큰 혜택인 양 계약했다가 뒤늦게 가슴을 치고 있다.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다. 제도권 금융으로 신용 공급이 쉽지 않던 시절 생겨나 집주인에겐 내 집 마련의 사다리가 되고 세입자에겐 강제 저축의 수단으로 목돈을 모으게끔 하는 사금융이었다. 전세대출도 그래서 생겨났다. 하지만 전세대출 틈새를 악용한 전세사기가 불거졌고 세입자의 전세대출이 집값을 밀어올리는 게 현실이다. 실제 2017년만 해도 66조 원이었던 전세대출 잔액은 매년 급증해 지난해 190조 원을 넘어섰다. 전세가 자체도 올랐을뿐더러 높은 전세가와 심지어 매매가까지 전세대출이 떠받쳐 주는 기이한 구조가 됐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전세금 반환 시기를 앞당기고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등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전세대출을 근본적으로 손보지 않으면 변죽만 울릴 가능성이 높다. 전세대출은 서민 주거 안정의 명목으로 그간 손대기 힘들었지만 전세가가 떨어지는 지금이야말로 실수요자나 주거 취약층은 보호하되 전세사기 등의 부작용은 걷어낼 장치를 만들 적기다. 그렇지 않으면 현 정부도 전세사기의 공범이 될 수 있다.

#전세사기단#정부#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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