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각 부처를 연두 순시하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방문하지 못했다. 초대 선관위원장이었던 사광욱 위원장이 헌법기관으로서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현직 대통령의 방문을 막은 것.
1960년 3·15부정선거와 그로 인해 촉발된 4·19혁명을 거치며 공정한 선거 관리의 필요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1963년 선관위가 출범했다. 올해로 창설 60주년을 맞은 선관위는 선거 관리뿐만 아니라 선거범죄 단속 등 권한을 키웠다. 여론조사, 선거토론 등으로 관리 영역도 확장했다. 여기에 2000년 이후부터는 조합장 선거, 정당 경선 등 위탁 사무 범위를 늘려 가고 있다. 창설 당시 348명에 불과했던 선관위 인원도 1987년 1000명, 1997년 2000명을 돌파한 뒤 2022년 기준으로 2961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 권한과 외형이 확대됐음에도 지난해 20대 대선 사전투표 부실 관리로 대형 혼란이 발생하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중립성을 더욱 엄격하게 유지하도록 중앙선관위원 임명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도 적지 않다.
● 내무부 산하에서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선관위는 1963년 1월 15일 창설됐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인 제1공화국에는 선거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었지만, 행정부인 내무부에 속해 사실상 정권의 뜻대로 움직였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4대 대선 및 5대 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가 극에 달했던 것도 선거위원회의 이런 특성 때문이었다.
부정선거에 대한 분노로 발발된 4·19혁명으로 들어선 제2공화국에서는 3차 헌법을 통해 선거위원회를 헌법기관으로 격상했다. 그러나 제2공화국이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9개월 만에 막을 내리면서 선거위원회도 해체됐다.
이후 들어선 제3공화국은 1962년 개정한 5차 헌법에 선관위 설치를 명시했다. 공정한 선거 관리를 보장하고 정권의 부당한 선거 개입을 방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진 데 따른 조치다. 대선·총선·국민투표 관리를 맡은 선관위는 1963년 10월 5대 대선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1987년부터 불기 시작한 민주화 바람으로 선관위는 도약기를 맞았다. 직선제로 치러진 1987년 대선을 시작으로 1991년 지방의회의원 선거,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2000년부터 교육감·교육의원 선거 등으로 선관위 업무가 순차적으로 확대됐다. 헌법 개정 등을 위한 국민투표뿐 아니라 서울시 무상급식 여부를 갈랐던 주민투표, 2006년 도입된 주민소환투표 등도 선관위 소관이 됐다.
2014년 6회 지방선거부터 시작된 사전투표도 선관위의 중요한 업무가 됐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사전투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3월 대선의 사전투표율은 36.9%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 조합장 등 민간 선거 위탁 업무 확대
업무 영역도 확대됐다. 선거 절차, 사무 관리와 계도 기능에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한 감시, 단속 권한이 더해진 것. 1994년 공직선거법 제정으로 선거비용조사권이 도입되면서 선관위는 국세청 직원 등 전문가를 파견받아 선거비용 실사를 시작했다. 투명한 정치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요구에 따른 조치다. 여기에 1997년에는 선거범죄조사권이 신설돼 체계적인 단속 활동을 시작했고 2000년 증거물품수거권과 재정신청권, 2002년 위법행위 예방을 위한 현장조치권을 차례로 획득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관위의 단속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 각 후보들은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선거 운동 단계에서부터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민간 선거를 위탁받아 관리하는 업무도 확대됐다. 공공기관이나 조합·단체 대표자 직선제에서도 공정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면서다. 먼저 정당으로부터 2005년 당내 경선, 2008년 당 대표 경선을 위탁받았다. 2005년에는 농·수·축협과 산림 조합장 선거를 위탁 관리하기 시작했고 2007년 중소기업중앙회장, 2010년 수협중앙회장, 2011년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차례로 맡았다. 정비사업조합·공동주택·새마을금고 임원, 시군구 체육회장 선거로 위탁 영역이 계속 넓어졌고 2025년에는 새마을금고 이사장 동시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올해 전국 단위 선거는 없지만 3월 8일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그 준비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 “정치적 편향 인사, 위원 못하게 해야”
지난해 선관위는 정치적 중립성 논란과 투표 부실 관리라는 두 가지 문제에 동시에 직면했다.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격리자를 대상으로 한 사전투표 과정에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지 않고 소쿠리 등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노정희 당시 선관위원장이 문제가 발생한 투표 당일 출근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노 위원장은 지난해 4월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했다. 선관위는 지난해 11월 두 달여에 걸친 특별감사를 통해 선거정책실장 등 간부들의 정직 징계를 의결하고 선거국 확대 개편 등을 단행했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선 사전투표에 대한 준비 부족과 부실 대처는 국민의 기대와 믿음을 흔들리게 만들었다”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선거 관리 역량 강화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지난해 1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3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던 조해주 당시 선관위 상임위원의 사의를 반려했다. 이에 조 위원이 비상임위원으로 전환돼 직을 3년 더 유지하는 상황이 되자 선관위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문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 출신인 조 당시 위원은 임명 당시부터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까지 나서 크게 문제 삼자 문 전 대통령은 결국 사표를 수리했다. 하지만 선관위가 그간 쌓아온 엄격한 정치적 중립 위상에 금이 갔다.
중앙선관위 위원은 선거 규칙을 만드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적 구성을 두고 여야가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각각 임명, 선출, 지명해 3권 분립 원칙에 충실해 보인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구성이 되기 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 몫 3명에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 몫 3명, 여기에 여당 추천 1, 2명까지 합하면 9명의 선관위원 중 최대 7, 8명이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인사들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제도적 보완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의 연임을 법으로 금지하고, 대선 캠프 출신 등 정치적 색깔을 가진 인사들이 선관위원이 되지 않도록 더욱 상세하게 규제해야 한다”며 “현재는 정당 가입자 정도에 대해서만 선관위원 임명을 막고 있는데 이 정도 규제로는 너무 약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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