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괜찮았다. 투쟁은 끝났다. 그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승리했다. 그는 빅브러더를 사랑했다.”
―조지 오웰 ‘1984’ 중
이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독재 권력 ‘빅브러더’에 맞서다가 모진 고문과 세뇌를 당한 끝에 저항 의지를 꺾는다. 조지 오웰의 마지막 작품인 이 소설은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권력의 속성을 꿰뚫어 보며 시대를 넘어선 고전 반열에 올랐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권력에 복종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저항할 힘이 부족해 억지로 따르는 모습보다 불이익을 피하거나 이득을 얻기 위해 알아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띄지 않던가.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 담긴 오웰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해 강렬하고 섬뜩하다. 오웰은 이 소설을 통해 모순되는 두 가지 신념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이중사고(doublethink)의 개념을 설명하며 그 모순을 경계했다.
연초에 출판사 창비가 장강명 작가의 산문집 원고에서 자사에 비판적인 내용의 수정을 요구했다는 뉴스를 봤다. 앞서 한 서점의 웹진 연재를 통해 이미 공개됐던 글에 추후 수정 요구를 했다는 게 어이없었다. 얼마 전에는 실천문학사가 성추행 의혹으로 활동을 중단한 고은 시인의 복귀작을 출간했다가 역풍을 맞아 해당 작품의 서점 공급을 중단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나 역시 이중사고의 덫에 빠졌음을 고백한다. 저항 의지를 꺾는 일은 내 안에도 체화돼 있었다. 문학계를 흔든 작금의 사태에 대해 한마디 보태려고 호기롭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열었다가 소심하게 관련 기사만 공유한 것이다. 저 출판사들과 혹시라도 함께 작업하는 일이 생길까 봐.
우리 사회는 어떨까. 오웰이 ‘1984’를 출간한 1949년으로부터 거의 74년, 그가 상상한 미래의 디스토피아인 1984년에서 근 39년이 흐른 현재의 우리는 과연 모순적 사고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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