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헛발질로 계속 점수를 까먹고 있는데 민주당이 그걸 못 받아먹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둘러싼 친윤·반윤 논란,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윤 대통령의 잇단 설화 등을 보면 그의 말이 아주 터무니없게 들리진 않는다.
‘가마니 전략’을 쓰자는 민주당 내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만히 앉아 정부 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자는 주장이다. 이대로 쭉 가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기 대선에서도 쉽게 이겨서 정권을 탈환할 수 있다고 내심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인사들이 모이면 등장하는 화두가 “5년 금방 간다” “윤석열 정부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이른바 ‘윤 정부 필패론’이다. 여러 논리가 동원되지만 딱히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당위와 기대, 희망이 강하게 담겨 있을 뿐이다. 당 전체가 ‘우리는 결국 이길 것’이라는 정신승리론 또는 운명론에 빠진 듯하다.
지금 정치 현실은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초와 비슷하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크게 흔들렸다. 민주당은 이를 계기로 강경 노선을 고집했다. 의원들은 한미 FTA를 반대한다며 해머를 들고 국회 본회의장으로 진입했다. 그것이 ‘야당의 길’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정부 여당에 대한 야당의 동반자 관계는 사라졌고, 여당은 일방통행의 길로 접어들었다. 민주당은 강경 노선을 통해 지지층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핵심 지지층을 강하게 결집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에 치러진 2012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은 “팍팍해진 살림살이” “여당의 무능과 독주” 등을 앞세워 ‘정권 심판론’을 외쳤다.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은 “이런 세력에 국회를 맡길 수 없다”는 ‘야당 과반 견제론’을 주장했다. 친이·친박 갈등, 정권 말 피로감 등으로 인해 당시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불리한 선거구도”라고 했다.
결과는 새누리당 152석 과반 의석, 민주당 127석이었다. 투쟁으로 일관한 야당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불안과 불신이 선거구도의 유리함보다 더 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108만여 표 차이로 패했다.
정부 여당 견제는 야당의 책무다. 야당에 대한 존중을 외면하는 집권 세력의 진영 정치도 문제다. 그렇지만 민주당에 더 중요한 것은 169석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이 ‘국민의 신뢰를 받아먹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다.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민심이 민주당에 요구한 건 거여(巨與) 민주당에 대한 반성과 변화였다. 권한을 거침없이 밀어붙였던 전 정부 때 의정활동에 대한 결과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런데 대선에서 0.73%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로 졌다는 점에 안주한 민주당은 반성 모드를 어물쩍 건너뛰고 곧바로 ‘야당 스탠스’로 전환했다. 여당 시절 벌어진, 국민 상당수가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의혹들에 대해서도 일단 ‘야당 탄압’ ‘정치 보복’이라고 외치며 장외로 뛰어나갈 태세다.
올해는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는 해다. 노동, 연금, 교육개혁 등의 의제를 정치권이 함께 제시하고 고통스럽지만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하는 시기다. 민주당은 여전히 169석을 가진 제1당이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반대하면 대통령과 정부의 어떤 정책도 자리를 잡을 수 없다. 무조건 비토를 요구하는 극단적 지지층의 논리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지금은 거여에서 거야로 바뀐 민주당이 ‘믿고 나라를 맡길 수 있는 세력인지’ 국민에게 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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