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김도훈]프랑스 연금 개혁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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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정년 연장하는 연금개혁 과감히 추진
경기 침체에 개혁 좌초, 英 타산지석 삼은 듯
韓 연금개혁, 사회적 갈등 조정에 성패 달렸다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전 산업연구원장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전 산업연구원장
프랑스가 다시 시끄럽다. 19일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파리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31일 2차 총파업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근로자들이 부담하는 사회보장부담금 수준으로는 은퇴자들의 연금을 보장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은퇴자들의 수명은 계속 늘어나서 재정을 압박하고, 근로자들의 수는 기대만큼 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연금 문제는 프랑스 경제의 앞날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정년 연장이라는 과감한 정책을 내놓고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근로자들의 일하는 기간과 사회보장부담금 지불 기간을 늘리려는 마크롱식 연금 개혁은 프랑스 경제를 되살리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치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왜 지금, 그리 과감하게 해야 하는가?’라면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프랑스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연금 개혁에 적극 나서게 된 데에는 이웃 나라 영국의 혼란이 타산지석으로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국은 작년 7월 보리스 존슨의 총리직 사임 이후 새 총리를 두 번이나 선출해야 하는 전례 없는 정치적 혼란을 겪은 바 있다. 이러한 혼란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코로나 팬데믹 발발 이후 주요 7개국 중 영국이 가장 먼저 경기 침체에 빠지는 등 오랜 ‘영국병’이 다시 도지게 되었는데도 어느 총리도 근본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사상 최단 기간의 재임 기록을 갈아치운 리즈 트러스 총리는 야심찬 감세정책이 과도하다는 비난에 직면하자, 서민 에너지 비용 지원이라는 상반된 정책을 내놓는 등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다 비난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다.

마크롱은 어려운 정치적 고비를 과감하게 정면으로 돌파하는 길을 택해 왔고 이를 통해 비교적 성공을 거두어 왔다. 그의 첫 임기 동안 두 가지 큰 고비를 넘길 때도 어김없이 그랬다. ‘노란 조끼’ 운동으로 프랑스 전체가 술렁일 때 마크롱은 전국을 돌며 ‘대토론회(Grands dbats)’를 열어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고, 팬데믹 당시에도 세 번이나 봉쇄조치를 추진하는 결기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번에도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에 나선 것이다.

연금 개혁의 핵심은 프랑스의 현행 정년퇴직 연령인 62세를 64세로 연장하는 것과 그렇게 늘어난 근로기간을 이용해서 근로자들이 사회보장부담금을 지불하는 기간도 42년간에서 43년간으로 늘리는 것 등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연금재정에 숨통을 틔우려는 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지금 그들이 누리고 있는 연금제도에 대해 너무나 익숙하고, 또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런 연금제도가 프랑스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정치적 결단을 하는 것을 기다려 온 셈이다. 이를 해결하는 길로서 보통 세 가지 대안이 제시되어 왔다. 정년 기간의 연장, 사회보장부담금의 증액, 그리고 연금의 감액 등이다. 세 번째 선택은 누구나 싫어하기 때문에 제외되었고, 마크롱은 두 번째 길을 단호히 배제했다고 한다.

사회당과 같은 온건 진보 정당들이 연금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려 하는 가운데, 마크롱의 정적들은 국민 정서에 영합하여 오히려 정년을 단축하겠다고 주장해 왔는데 사회보장 재정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임은 자명하다. 그 대안으로 극우파는 외국인 거주자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의 철폐를, 극좌파인 프랑스 앵수미즈는 부자 증세를 내세운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정치적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연금 개혁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금까지 항상 협상 파트너가 되어 왔던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조차도 강경파로 돌아서서, 19일 전국적인 파업에 동참하고 말았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68%가 반대하고 있으니 문자 그대로 사면초가인 셈이다.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이르게 ‘선진국병’에 빠져들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가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연금 재원 고갈이 일찍부터 예고되어 왔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려는 연금 개혁의 필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향후 나타날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조정해 나가느냐에 개혁의 성패가 달린 것 같다.

#프랑스#마크롱#국민연금#연금개혁#동아시론#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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