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시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최초로 무주택 청년(만 19∼39세)이 주택을 구입할 때 대출 이자를 5년 동안 최대 1500만 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전세대출 이자는 4년간 최대 800만 원을 지원한다. 수도권으로 떠나는 청년들을 잡기 위해 통 큰 지원을 결심한 것이다.
많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원 기준도 폭넓게 설정했다. 사회초년생과 독신 근로자의 경우 연 소득 5000만 원 이하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자녀 2명이 있는 부부는 합산 소득이 9000만 원 이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호응도 높아 2018년부터 현재까지 청년 1045명이 혜택을 받았다. 광양시는 이 정책의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행정안전부로부터 저출산 대응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인구 소멸’의 공포에 시달리는 지자체 중에는 광양시처럼 단순한 퍼주기식 현금 지원 대신 청년과 신혼부부들의 마음을 잡을 이색 대책들을 마련한 곳이 적지 않다. 출산장려금 등 현금성 복지만으론 지자체의 인구를 늘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 2067년 지자체 대부분 ‘인구 소멸 고위험’ 분류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쏟아부은 돈은 약 380조 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다. 통계청의 2021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전국 평균 합계출산율은 0.81명에 불과하다. 2015년 1.24명과 비교하면 6년 만에 약 35%나 줄었다. 세계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낮은 출산율은 지방 소멸로 이어진다. 특히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소멸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감사원은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0∼39세 여성 인구의 5배를 넘어선 지역을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2017년의 경우 지자체 243곳 중 12곳이 소멸 고위험 지역에 해당했다. 2047년에는 소멸 고위험 지역이 157곳, 2067년에는 229곳까지 늘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과 부산 광주 대전 등 광역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가 소멸 위기에 빠진다는 것이다.
● 지역적 매력 특성 살려 ‘청년 마음 잡기’
전문가들이 꼽는 대안은 지자체가 보유한 지역적 매력과 특성을 살려 청년들의 마음을 잡고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눈에 띄는 정책을 도입한 지자체도 적지 않다.
강원도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양구군은 공공산후조리원 서비스 대상자를 인근 지자체 주민으로까지 확대했다. 양구 주민에게는 2주 동안 180만 원을 지원하고, 인접 지역인 인제군 화천군 등의 주민들에겐 이용료 30% 할인 혜택을 줬다. 양구 주민뿐 아니라 인근 지역 청년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만든 것이다.
2021년 7월 개원 이후 지난해 말까지 374명이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양구군 산모(73%) 외에도 인제군(12%), 춘천시(9%), 화천군(2%) 등 인근 지역 산모들이 시설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구군 관계자는 “당장 타 지역 산모들이 이사를 오진 않겠지만 평소 관심이 낮았던 양구에 머무는 경험을 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며 “많은 청년들에게 양구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갖게 만들고 중장기적으로 ‘가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광양시의 출산 장려 정책인 ‘어린이집 반 정원 조정 사업’도 작지만 만족도가 높은 정책으로 꼽힌다. 정부 지침은 어린이집 보육교사 1명당 만 0∼1세 영유아 3명을 돌보도록 했지만 광양시는 보육교사 1명당 2명만 돌보게 했다. 보육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조치인데 추가로 들어가는 인건비는 광양시가 전액 지원한다. 광양시 관계자는 “실제 엄마들이 느끼는 안정감과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 ‘결혼부터 시키자’ 나선 지자체들
일부 지자체들은 지역 청년들의 결혼을 장려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역에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하면 중장기적으로 정착 인구 증가 및 출산율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경남 하동군은 지난해 7월부터 전국 최초로 ‘인공지능(AI) 커플 매칭 프로그램’인 ‘AI 맞썸다방’을 도입했다. 청년들이 홈페이지에서 생활 방식, 성격, 사회적 관계 등 총 160개 문항에 답하면 AI가 성향을 분석해 최적의 상대를 찾아준다. 하동군은 군내뿐 아니라 인근 지역인 경남 진주 사천 남해 하동, 전남 여수 순천 광양 보성 고흥 등에서도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동군 관계자는 “현재 회원 300여 명이 가입해 짝을 찾고 있다”며 “사업 초기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라고 설명했다.
진주시는 ‘미혼 남녀 인연 만들기’ 행사를 12년째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지금까지 10쌍이 결혼에 성공했다. 진주시 관계자는 “매년 2번씩 여는 행사에 남녀 20명씩을 초대하는데 경쟁률이 최대 5 대 1에 이른다”며 “연애 중인 커플을 포함하면 실적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아빠 육아휴직자 우대하는 울산
출산율을 높이려면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각 지자체는 이를 위해 보육에 나서는 아빠나 조부모를 겨냥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울산시는 아빠 육아휴직을 장려하기 위해 2019년부터 근무평가 때 육아휴직자를 우대하고 있다. 또 육아휴직 중인 공무원에게 ‘우’(상위 60% 이내) 이상의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제도 시행 후 출산·육아 직원에 대한 인사 불이익이 거의 없어지고, 남성도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 8월부터 조부모 등 4촌 이내 친인척에게 아이를 맡기는 가정에 월 30만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육아가 서툰 아빠 등을 지원하기 위한 ‘육아 코디네이터’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 현금 지원 넘어 ‘지역 맞춤’ 대책으로 진화
전문가들은 더 많은 지자체들이 현금성 복지를 넘어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정책 개발을 시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은 “현금성 복지 경쟁은 ‘제로섬 게임’으로 각 지자체 간 인구 뺏고 뺏기기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나라 전체 출산율에는 별 도움이 안 되고 예산만 낭비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지자체들이 서로 다른 지역적 매력과 특성에 맞게 지방 소멸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청년과 신혼부부들의 마음을 잡아야 체감할 만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나 정책을 인근 지자체들과 연계해 범위를 넓히는 지역 거점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교통망이 구축된 인근 지자체끼리 힘을 모아 공동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수도권이 가진 강력한 인구 흡입력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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