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필요자금 ‘보조할 수 있다’는 헌법
전두환 신군부가 정당통제하려 도입
민심 외면하고 주군에 충성하게 만들어
“보조금 폐지” 조경태 공약 찬성이다
집권당이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엔 관심 끊을 작정이었다. 대통령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당’이어서 죽다 살아난 정당이 다시 대통령당 되겠다고 당헌까지 바꿨다. 민심을 받든다며 국민 여론조사 30% 반영하던 경선 룰을 당원 선거인단 투표 100%로 갈아 치운 건 일반 국민은 상관 말라는 경고나 다름없다.
그럴 바엔 정당 운영도 당비 100%로 할 것이지 왜 피 같은 세금으로 보조금을 받아먹나 싶던 차에 눈이 번쩍 뜨이는 후보를 발견했다.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를 약속한 조경태 의원이다. 5선 의원인 그는 “후진적 한국 정치가 계속되는 이유 중 가장 고질적 문제점 중 하나가 정당 국고보조금”이라며 당비보다 많으면서도 통제받지 않는 국고보조금이 정당 자생력을 잃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당심 1위 나경원, 한때 민심 1위를 달리던 유승민이 ‘윤따’(윤석열 대통령의 따돌림) 끝에 불출마를 선언한 뒤 윤심과 윤힘(윤 대통령에게 힘) 후보가 양강을 다투는 가운데 신핵관, 심지어 대통령 부인 팬클럽 회장 출신까지 뛰는 판이다. 이 속에서 대통령 팔지 않는 후보가 당원들한테 인기 없을 게 뻔한 공약을 들고나왔으니 강심장이 아닐 수 없다.
안다. 정당 국고보조금제는 헌법 사안이다. 헌법 8조 ③항에서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헌법을 만들 때 도입된 것임을 알고도 고수할 자신이 있는지 의문이다. 정당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신설됐다는 논문까지 봤다면 ‘민주 정당’으로서 면이 안 서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정치자금 부패에 빠지지 않기 위해 국고보조금이 필수라는 정당인이 있다면, 중학교 사회 교과서를 봐주기 바란다. 정당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만든 단체라고 정의돼 있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정책을 만들고, 국가기관의 정책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며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정당 역할이다.
그런 정당이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고보조금에 의지하면, 더 이상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들으려 애쓸 필요가 없어진다. 국가와 카르텔을 형성한 ‘카르텔 정당’이 되는 거다. 기득권 정당들이 민심에 따라 정책 경쟁을 하는 대신 여당은 윤심에만 신경 쓰고, 야당은 당 대표 방탄에만 골몰하는 것도 결국 돈 때문이다. 그들은 ‘살인마 정권’이 퍼주기 시작한 돈뭉치 속에 안존할 수 있어 좋겠지만 국민으로선 지지하지도 않는 정당에 강제 기부금을 바치는 꼴이다.
돈에 눈멀어 정당이 유지되는 추태도 벌어진다. 국민의당 비례의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2018년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가 바른정당과 합친 것도, 뜻이 다른 의원들이 서로 “네가 나가라”며 당에 붙어 있던 것도 돈 때문이었다며 선거보조금 타먹는 구태정당의 극치를 봤다고 회고록에 썼다.
민주주의에는 당연히 비용이 든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당처럼 민심을 외면하고, 당내 다른 목소리는 내부 총질이라며 압박하고, 주군에게만 충성하는 정당들이 혈세에 의존하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심지어 경상보조금 외에 선거가 있는 해엔 선거 전에 선거보조금, 선거 후엔 선거비용 보전금까지 이중 지급된다. 2022년 그렇게 부자 정당들에 퍼준 세금이 무려 1420억 원, 최근 정부가 취약 계층에 예비비로 긴급 지원한 난방비 1000억 원보다 많았다.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이 2021년 발간한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정당’에 따르면, 유럽 정당들도 국고보조금을 받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선거비용 보전을 받는 정도가 일반적이다.
특히 독일은 국고 지원이 당 자체 수입을 절대 넘지 못하게 규정해 놨고 국고지원 총액도 제한한다. 초당적 감시와 통제를 하는 건 물론이다. 우리처럼 2001년부터 2020년까지 1조2570억 원의 보조금을 받고도 감사 받은 적 없고, 홈페이지 공개도 않는 정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은 양대 진영 정당이 국가의 재정 지원으로 최대의 혜택을 누리고, 대안적 정당의 부상이 저지될 수 있게 했다”는 대목을 보면 낯이 뜨거워질 정도다.
윤 대통령은 시민단체의 국고보조금 지원 체계를 재정비하겠다며 “국민의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 여러분께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카르텔 정당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만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될 경우 대선 비용 보조금 434억 원을 토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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