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학의 발달, 사법사무, 변호사사무의 쇄신 개선, 변호사의 품위 보전과 국제 친선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1949년 11월 만들어진 변호사법 제정안 43조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설립 목적에 대해 이같이 규정하고 있다.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자 수는 16명에 불과했고 1952년 창립된 대한변협의 회원도 대부분 현직 판검사 등 공직자였다.
당시 법엔 대한변협이 13번 등장하지만 현행법엔 111번 나온다. 그만큼 기능과 역할이 방대해졌다는 의미다. 그뿐만 아니라 협회장은 대법관, 검찰총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대법원장 지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 각종 후보추천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권한과 영향력이 막강한 52대 협회장에는 김영훈 변호사(59·사법연수원 27기)가 선출됐다. 김 신임 회장은 지난달 17일 서울 서초구 대한변협회관에서 열린 당선증 교부식에서 “이번 선거는 산업 자본의 법률시장 침탈이란 위기 상황에서 치러졌다”며 “사설 플랫폼 퇴출 및 공공 플랫폼 ‘나의 변호사’ 혁신을 약속드리겠다”고 했다.
‘3만 변호사’ 수장의 첫 일성이 로톡 등 사설 플랫폼 퇴출인 것은 민망한 일이다. 몇 년 전부터 대한변협은 로톡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로톡 이용 변호사를 징계하는 등 소속 단체가 일부 회원들을 사실상 ‘왕따’시키는 것도 모양새가 사납다.
특히 이번 선거에선 출마 후보 모두가 로톡 퇴출을 구호로 내세워 회원들의 눈총을 샀다. 선거운동 과정에선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문자 폭탄’까지 보냈다. 변호사들 사이에선 “이런 선거는 처음이다. 정치판이 따로 없다”는 반응이 상당수였다. 선거에 회의를 느낀 일부 회원들이 투표를 거부하면서 이번 선거에선 전체 회원 중 약 37%만 투표를 했다. 47∼51대 회장 선거 투표율 55∼60%와 비교하면 3분의 2가량만 투표한 것이다.
70년 전에 만들어진 제도를 시대에 맞게 고칠 때가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전관 변호사는 “과거엔 공익단체 성격이 강해 각종 권한이 주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공직을 안 거친 회원들이 90%에 가깝고 단체 성격도 이익단체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로톡의 처지가 불법 콜택시 영업 논란을 빚다가 사업에서 철수한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와 비슷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타다 서비스가 사라진 후 심야 택시 승차난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격 인상 등으로 소비자들의 편익이 저해됐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에 갇히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코끼리 생각이 난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협이 사설 플랫폼 퇴출을 언급할수록 상당수의 국민들은 “대한변협이 법률 소비자는 고려하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나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한변협은 사설 플랫폼 퇴출보다 시급한 과제가 많다. 인권 보호, 법률제도 개선, 청년 변호사들의 수임 및 고용 문제 등이다. 판사나 검사는 한자로 ‘일 사(事)’를 쓰지만 변호사는 ‘선비 사(士)’를 쓴다. 선비는 시장의 필부와는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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