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 찾기 소용 없는 인공지능 심판 전성시대 [광화문에서/황규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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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신문에 글을 쓰는 건 규칙을 따르는 일이다. 예컨대 지금 읽고 계신 ‘광화문에서’는 제목을 반드시 두 줄로 달아야 하고, 본문은 1450자 안팎으로 써야 한다. 더 쓸 말이 전혀 없거나 더 할 말이 넘칠 때도 ‘얄짤없다’. 작은따옴표까지 써가며 일부러 속어를 쓴 건 신문에 글을 쓸 때는 맞춤법을 따라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맞춤법을 따른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지난달 국립국어원에서 규정을 손질하기 전까지 로마자 ‘R’은 한글로 ‘아르’라고 써야 했다. 이제는 ‘알’도 된다. 하필 ‘알’이 문제였던 건 개인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R’ 교재를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맞춤법에 따라 원고에 전부 ‘R(아르)는’이라고 썼지만 출판사에서는 “독자들에게는 ‘R(알)은’이 훨씬 익숙하다”고 의견을 냈다. 신문에 쓰는 글도 아니니 이번만 ‘반칙’을 저지르자며 결국 표현을 바꿨다.

스포츠에서 ‘규칙을 잘 따른다’는 건 사실 규칙과 반칙 사이의 빈틈을 찾아내는 일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축구에서는 원래 오프사이드인지 아닌지 심판이 헷갈릴 만한 타이밍을 잘 포착해 패스를 찔러 넣는 팀이 강팀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때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AI는 관련 규칙을 문자 그대로 엄격하게 해석해 공격수 어깨 일부만 라인에 걸쳐도 오프사이드로 판정했다. 이에 ‘경기 흐름이 너무 자주 끊긴다’는 불만도 나왔다.

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 도입을 앞두고 있는 야구도 비슷하다. 현재 좋은 포수는, 스트라이크는 당연히 스트라이크 판정을 이끌어 내고, 볼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수 있도록, 심판을 잘 속이는 선수다. AI가 미리 입력된 스트라이크 존에 따라 ‘기계적으로’ 판정하기 시작하면 이런 ‘미트질’은 야구에서 별 쓸모없는 기술이 될 거다.

인간 심판은 ‘무의식적으로’ 강자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기도 한다. R로 ‘인공신경망’을 만들어 지난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때 심판 판정이 얼마나 공정했는지 알아본 적이 있다. 심판진은 ‘도전자’ 키움보다 ‘정규시즌 챔피언’ SSG에 유리하도록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렸다(bit.ly/3XTbSWi). 심판진이 특정 팀을 편애한 게 아니라 ‘인간이기에’ 생긴 일일 뿐이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도 스타 선수가 볼 판정을 유리하게 받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AI 심판에게는 당연히 이런 ‘인간적인 요소’가 없다.

이런 변화에 대해 AI는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 인기를 끄는 대화형 AI ‘챗GPT’에 물어봤다. “AI의 잠재적 이익과 그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I 기술이 주는 이익과 스포츠의 인간적인 요소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스포츠의 무결성과 즐거움을 보존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교과서적인 답변’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AI는 역시 규칙을 잘 따르는 모범생인 모양이다.

#인공지능 심판#챗gpt#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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