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지방소멸대응기금… 돈 잔치로 안 끝나려면[광화문에서/유근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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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사회부 차장
유근형 사회부 차장
“갑을 관계가 완전히 바뀐 것 같다.”

충청 지역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A 씨의 하소연이다. 정부 예산 확보를 위한 정책계획서 작성을 홍보기획사에 맡기려 했는데 알아보니 최근 비용이 급증한 것은 물론 콧대가 높아져 맡기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10조 원이 지방으로 내려가는 지방소멸대응기금 확보전이 치열해지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했다.

지자체 사이에선 ‘홍보기획사를 잘 만난 지자체가 예산을 더 많이 가져갔다’는 후문까지 도는 실정이다. A 씨는 “1, 2년 전에는 약 3000만 원이면 기획사가 일을 맡아줬는데, 이제 1억 원까지 부르는 곳도 있다”고 했다.

A 씨의 푸념을 듣다 보니 우려스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중앙정부의 예산 배분은 민간 시장의 입찰과 엄연히 다른 공적 영역이고,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다. 그런데 지자체들이 ‘족집게 일타강사’를 모시듯 큰돈을 내고 홍보기획사를 모시러 다니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기획사에 의해 잘 다듬어진 계획서가 실제 예산 배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지자체 공무원들은 정책 수립 역량조차 없는 것인지 되묻게 된다.

웃지 못하는 건 중앙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돈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또 점차 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된 지방소멸대응기금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2031년까지 매년 1조 원씩 총 10조 원을 배분할 계획이다. 매년 각 지자체의 인구감소지수와 투자계획 등을 고려해 등급을 매긴 후 122개 지자체에 돈을 나눠주게 된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 투입에 비해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자체 중 상당수가 지자체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기 위한 돈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인구학자는 “지자체 인구 유출의 핵심은 청년인데, 인구 소멸을 막겠다는 사업 중 상당수는 청년을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 지역 인프라 구축 등 간접적인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투입된 돈의 효과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장들이 각종 수단을 동원해 지방소멸기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건 비교적 사용처 제한이 적은 ‘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돈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모든 지역의 인구 소멸을 막을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인구추계에 따르면 2050년 청년인구(19∼34세)는 현재의 절반으로 급감한다. 비수도권 청년이 모두 수도권으로 이동해도 국가 기능이 유지되기 힘들다는 전망도 있다. 이 때문에 전체 지자체를 구하기 위한 ‘N분의 1’식의 예산 배분이 아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여성 의원들은 지난달 김건희 여사를 만나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를 주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이 저출산위를 직접 주재하며 해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극적인 반전은 어렵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보여주는 시그널이 될 수 있을진 모른다.

#지방소멸대응기금#정책계획서#지자체 숙원 사업#대한민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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