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르손은 스웨덴의 국민 화가다. 스웨덴 국립미술관에 가면 그의 대표작을 볼 수 있는데, 전시실이 아니라 중앙 홀 벽면에 전시돼 있다. 스웨덴의 역사와 전설을 담은 벽화 연작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의뢰한 벽화인데도 마지막 그림은 완성된 지 80여 년이 지나 설치되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한겨울의 희생’은 스웨덴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다. 북유럽 전설에 나오는 스웨덴 왕 도말데가 한겨울 기근을 피하기 위해 인신공양 의식을 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 배경은 고대 노르웨이 신앙의 중심지였던 웁살라 신전이다. 금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신전은 세 명의 신을 모셨는데, 각각 기근과 역병, 전쟁, 결혼을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중 기근과 역병을 담당하는 신이 가장 힘이 셌기에, 나라에 기근이 들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의식을 진행 중인 제사장 앞에는 하얀 포대가 놓여 있다. 산 채 끌려온 희생양이 들어 있을 터. 붉은 망토의 집행자가 칼로 찌를 준비를 하자, 왕이 벌떡 일어나 스스로 옷을 벗는다. 백성을 더 이상 희생시킬 수 없으니 자신을 죽이라고 명하는 장면인 것이다. 왕이 나체로 등장하고 인신공양이라는 미신적 주제를 다루니까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술관에서 거부당한 그림은 결국 다른 사람 소유가 됐고, 화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83년에는 아예 일본으로 팔려 갔다. 그러다 1992년 국립미술관 개관 200주년 기념 라르손 헌정 전시회 때 이 그림이 출품됐다. 일본에서 빌려 온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무려 30만 명이 몰려들었다. 그림을 반드시 되찾아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그림은 다시 스웨덴 소유가 됐고, 1997년 마침내 제자리에 걸리게 됐다. 오판되어 거부당한 지 82년 만이었다. 이제 그림의 주제는 다르게 읽힌다. 백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왕. 화가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바로 그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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