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과 박완서의 나목[서광원의 자연과 삶]〈67〉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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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우연은 우연일 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우연이라는 게 말 그대로 우연히 오긴 하지만 그냥 지나가지 않을 때가 많아서다. 화가 박수근과 소설가 박완서의 인연 역시 그렇다.

1965년 10월, 당시 평범한 주부로 살던 박완서는 박수근의 유작전이 열린다는 기사를 보고 전시회에 갔다가 그의 그림에 붙들렸다. 그가 알고 있던 박수근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서울의 미군 PX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였다. 박완서는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전쟁이 나면서 점원 생활을 해야 했고, 강원도에서 상경한 박수근도 이곳에서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며 입에 풀칠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 서로의 길을 갔는데, 그동안 박수근은 온갖 어려움에도 자기 길을 꾸준히 간 덕분에 누구나 알아주는 화가가 되었던 것이다.

박수근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지만, 박완서는 감동했다. 그 고난을 이겨내고 결국 자기 세계를 이루어냈지 않은가. 5년 뒤, 나이 마흔에 여성동아 현상공모에 당선된 ‘나목(裸木)’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었다. 소설 후기에서 말했듯, 전쟁의 와중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려고 말이다.

소설 제목을 ‘나목’이라고 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목은 벌거벗은 앙상한 겨울나무를 말하는데, 박수근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박수근은 “워낙 추위를 타선지 겨울이 지긋지긋”하다고 했다는데, 왜 이런 나무를 많이 그렸을까?

그가 명확하게 밝힌 적은 없지만, ‘나목’이라는 말 자체가 답이 될 듯하다. 나목은 죽은 듯 서 있지만 죽은 나무, 그러니까 고목(枯木)이 아니다. 추운 겨울을 버티고 이겨내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단출한 모습으로 혹독한 시기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단칸방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살았던, 꿈은 있지만 가난했던 화가는 이런 겨울나무를 보며 자신의 삶을 다독였을 것이다. 견디고 이겨내면 결국 봄은 온다고 말이다. 당시 나이 마흔이면 살 만큼 살았다고 하던 때에, 소설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박완서 역시 자신이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음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때마다 그 흔적을 안에 간직한다. 일 년에 하나씩 나이테가 생기는 이유다. 그래서 나무들에게 겨울은 그저 버티기만 하는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다. 1억4000만 년 전 생존 전략으로 개발한, 성장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다. 진짜 의미 있는 일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듯 말이다. 우리가 보는 저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이런 삶의 원리를 알려줄 날이 머지않았다.

#박수근#박완서#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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