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윤완준]“내년 총선 공천 때 살생부 등장할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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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일치” vs “친소관계 공천 안 돼”
공천권 개혁 없는 선거제 개혁 공허

윤완준 정치부장
윤완준 정치부장
“내년 총선 공천 때 살생부 논란이 2016년 때보다 더 커질지도 모르겠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인사는 10일 최근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년 공천권을 둘러싼 내분의 예고편이라는 것이다.

살생부(공천 배제자) 논란이 불거진 2016년 총선 공천 때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와 친이(친이명박)계 갈등은 내전을 방불케 했다. 친박계는 친이계와 유승민계 위주로 탈락시키고 친박계와 진박(진짜 친박)을 대거 공천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가 “핵심 ‘친박대오’ 당을 만들겠다. 비박계와 불편한 친박을 정리하겠다”고 했다는 주장까지 훗날 흘러나왔다.

중진 인사는 “선거에서 이기는 공천을 할 수 있다면 대통령과 당 대표가 공천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부정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비판을 듣기 싫다고 내쫓고 생각이 안 맞는다고 잘라내면 그게 살생부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와 가깝다는 이유로 경쟁력 부족한 후보가 공천되고, 공천받지 못한 이들이 저항하다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고, 기어코 공천을 따내기 위해 당 권력과 뒷거래하다 알려지면 국민의힘 총선은 엉망이 될 것이다.”

대통령실은 “모든 권력 투쟁은 당청 갈등에서 비롯된다”며 “당정 일치”를 강조한다.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이 탄핵될 수 있다는 취지로 김기현 의원이 얘기한 데 대해서도 그런 얘기 할 수 있다는 속내다. 반면 대통령이 사실상 여당을 직할하면서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의 정책 방향을 통제하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인식도 적지 않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니어재단이 원로 그룹들의 얘기를 들어 펴낸 ‘한국의 새 길을 찾다’에서 “대통령제는 크든 작든 제왕적 대통령제로 자꾸 간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어도 벌써 제왕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전 원장의 아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과 죽마고우다. 지난 대선 한때 윤 대통령과 함께했다 갈라선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책에서 “문제는 대통령이 과연 민주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느냐다. 정치 현장에서 보니 (그간) 당선된 사람은 구름 위로 올라가고 항상 태양이 비추고 있으니 자기 멋대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를 가지고는 민주주의를 해나갈 수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에는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에서는 벌써부터 윤 대통령 측근들의 내년 총선 차출설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때도 청와대 참모들이 대거 총선에 나섰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이들이 2020년 총선에서 당선된 뒤 ‘대통령 경호부대’처럼 행동했다. 이러면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가 뭐가 되는가. 제왕적 대통령제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내 적지 않은 의원들도 전당대회 분란에 “이건 정말 아니다”라면서도 내년 공천을 받지 못할까 침묵한다.

국회에서 선거제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이를 위한 여야의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도 출범했다. 이들은 선거제 개혁으로 다당제가 되면 정치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야 모두 공천권을 둘러싼 ‘사당화’ 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공천권 개혁 없이는 선거제 개혁도 공허한 일이 되는 게 아닐까.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내년 총선#공천#살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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