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프의 전설 최경주(53·SK텔레콤)는 며칠 전 통화에서 영어를 섞는 특유의 어법으로 유쾌하게 자신의 금주 사실을 전했다. 요즘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자택에 머물며 한국에서 온 골프 꿈나무들과 동계 훈련을 하는 그는 “술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았다. 운동선수로서 진작 안 해야 했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선수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진출한 첫해인 2000년 초 하루 3갑까지 피우던 담배를 8개월 만에 완전히 끊은 뒤 23년째 금연하고 있다. “공도 잘 못 치는데 남들은 안 하는 담배까지 피우는 모습에 스스로 실망을 느꼈어요. 담배 끊고 술까지 안 마시니 시간 낭비 줄이고 골프에 더욱 집중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최경주는 30세 전후부터 철저한 관리로 20년 넘게 안정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PGA투어에서 아시아 최다인 8승을 올린 뒤 50세 이상이 출전하는 챔피언스투어에서도 우승한 비결에는 금주, 금연도 꼽힌다. 30대, 40대, 50대에 모두 정상에 선 건 보기 드문 성과. 올 시즌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지난 시즌보다 9야드 늘어난 280야드 정도다.
담배, 술을 멀리하는 게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라는 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현실적으로 금연보다 쉽지 않다는 금주는 음주량만 줄여도 암을 예방할 수 있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이 음주를 시작하면 구강암, 식도암, 인·후두암, 간암, 직장암, 유방암 등 알코올 관련 암 발병 위험이 최대 34%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면 매일 맥주 375mL 2캔을 마시는 사람이 음주량을 절반 이하로 줄이면 각각 8%씩 위험도를 낮추는 효과가 나타났다.
술은 열량 또한 높아 체중 조절의 훼방꾼이다. 소주 한 병(360mL)은 408Cal 정도로 밥 두 공기와 비슷하다. 술을 마시면 식욕 억제 호르몬이 덜 나와 과식을 유발한다.
술을 멀리하면 운동, 독서, 음악 등 다양한 취미 생활로 삶을 풍족하게 할 수 있다. 잠잘 시간이 늘어나고 수면의 질도 높아진다. 지갑 부담도 던다. 최경주는 “금주하면서 훈련 효과가 커졌다. 코어 근력도 강화됐다. 몇 년째 체중 90kg이다. 올해 2승은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최경주의 애창곡은 남진의 ‘빈 잔’. 비워야 다른 뭔가를 채울 수 있다며 구성지게 부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의 잔에 술은 채워지지 않지만 50대에도 힘차게 전진하는 에너지가 충만해 보인다.
P.S. 서구에는 새해 첫 달을 금주로 시작하는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 캠페인이 있다. 어느새 2월도 중순. 신년 다짐이 슬그머니 실종되는 시기다. 담배, 술의 빈자리는 그대로 남겨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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