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임사체험’에 대한 보고들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사고나 질병으로 심장이 정지되고 많은 경우 뇌파까지 소실됐다가 깨어난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알려졌다.
이들은 의사가 자신의 사망을 선언하는 걸 보고, 가족들이 비탄에 잠긴 것도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보았다고 말한다. 많은 경우 놀라울 만큼 실제 일어난 것과 같은 상황 또는 세밀한 대화 내용까지 전한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지나간 삶을 본다. 이른바 주마등같이 스쳐 간다는 표현처럼 어릴 때부터의 중요한 순간들이 압축되어 빠르게 회상되었다고 한다.
그 뒤엔 어둡고 좁은 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터널, 원통, 어떤 사람은 깊은 계곡이라고 표현하는데, 날아가거나 헤엄치듯이 공간을 유영했다는 얘기가 많았다.
이 좁고 어두운 공간을 지난 다음에는 환한 빛이 다가왔다고 한다. 다가가자 그 빛은 사람이나 신처럼 말을 건다. 세세한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지금은 여기 들어올 수 없다’며 입장이 거부됐고, 의식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몇 년 전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전곡을 듣다가 이 임사체험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등골이 서늘해졌기 때문이다.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은 다섯 악장으로 되어 있다. 1악장은 말러가 작곡 당시 ‘장송제’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출판하면서 삭제했다. 말러는 환상 속에서 자신의 시신이 꽃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았고, 그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임사체험을 보고한 이들이 자신의 죽은 모습을 내려다보듯이 보았다는 얘기를 떠올리게 한다.
2악장은 느릿한 민속 춤곡이다. 말러는 이 곡에 대해 이렇게 썼다. ‘떠나간, 사랑하는 이의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 젊은 날의 슬픈 기억과 사라진 순수.’
3악장은 흐르는 듯한 스케르초다. 긴 터널이나 계곡을 지나 흘러가듯이 이동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어쩌면 억지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말러가 이와는 다른 설명을 붙였기 때문이다. “회의와 거부의 영혼이 그를 사로잡는다. 그는 수많은 어지러운 환영을 응시하고, 자신과 신에 대해 절망한다.” 어떤 광경을 그렸다기보다는 관념적인 표제다. 하지만 내게 이 악장이 어두운 곳을 흘러가는 듯한 모습으로 느껴지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다음은 4악장이다. 알토 솔로가 들어가며 ‘태초의 빛’(Urlicht)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1인칭 화자는 천사에게 자신은 천국에 들어가고 싶으며 돌아가기 싫다고 한다. 제목부터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이 어둠 속의 유영 끝에 빛을 만나게 된다는 얘기를 떠올리게 한다. 천사와 천상세계로의 입장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도 임사체험에서 보고된 얘기와 상응한다.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들이 들려준다는 얘기가 죽어가는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인지, 사망한 뒤 우리의 영혼이 실제로 거치게 될 일인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경험했다는 광경들 사이에 이런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부활’이라는 제목이 붙은 말러의 이 교향곡에서 임사체험을 연상시키는 일정한 흐름 또는 줄거리가 있는 것은 단지 우연일까? 다음은 상상일 뿐이다.
말러는 동생이 많았는데 그중 여럿이 어릴 때 열병으로 죽었다. 아직 19세기 후반이니 흔했던 일이다.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동생의 정신을 잡아 일으키기 위해 형인 말러가 영웅의 얘기를 지어서 들려줬는데, 그만 잠들었다가 일어나 보니 동생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더라는 회상도 있다.
이렇게 죽어간 동생 중 하나는 자신이 죽음 가까이 갔다가 경험한 얘기를 형에게 들려주지 않았을까. 또는 말러 자신이 당시 흔했던 열병이나 그 밖의 이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고, 그 지울 수 없는 경험을 교향곡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말러는 이 교향곡의 4악장까지 이런, 개인적 죽음의 체험과도 같은 세계들을 표현했고 이후 곡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5악장에서는 인간 전체의 죽음 이후 부활과 구원을 표현한다.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는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이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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