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둘이 오로라를 보고 왔다. 이 짧은 문장에 몇 개의 기적이 숨어 있는지. 다 큰 딸과 회갑 넘은 아버지 단둘이 여행이라니. 그것도 오로라….
언젠가 깨달았다. 엄마와는 둘이 해본 게 많은데 아빠와는 없다는 것을. 사람은, 하다못해 나도 여럿이 있을 때와 둘이 있을 때가 다른데, 함께 있을 때의 아빠뿐 아니라 둘이 있을 때의 아빠를 알고 싶었다. 이후 ‘아빠와 단둘이 여행’은 수년간 내 버킷리스트에 있어 왔지만 엄두 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가 왔고 나도 아빠도 나이를 먹었다. 나의 일상은 더 복잡해졌고, 아빠의 무릎은 더 약해졌다. 그리고 아빠가 은퇴를 했다.
더 늦으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나랑 여행 가자. 가고 싶은 데 없어?” 아빠는 ‘오로라’를 보고 싶다 하셨다. 순간 당황했다. 그간 아버지의 여행은 출장 아니면 ‘패키지’였으므로 자유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오로라’라면 일이 커졌다. 후에 알았는데 ‘설마 이걸 실행할까’ 하셨단다. 막상 내가 티켓을 내밀었을 때 당황한 건 아빠 쪽이었다.
14시간의 비행 끝에 핀란드 헬싱키에 닿았다. 정해진 일정 없이 먹고 걸었다. 대중교통을 타다 보니 종종 이 방향이 맞나 헤매곤 했는데, 이조차 아빠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꼬마였던 딸 손에 이끌려 다니는 기분이 묘하다 하셨다. 이어 더 북쪽으로 오로라를 찾아 나섰다. 산타의 공식 거주지 로바니에미. 한때 산타였던 아빠를 진짜(라고 합의된) 산타에게 데려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마침내 오로라를 만났다. 그 자체도 장관이었지만, 내 옆에 아빠가 있다는 사실이 더 꿈같았다.
이후 며칠을 더 나며 몰랐던 아빠의 모습을 많이 보고 들었다. 언젠가는 카페에서 나오는데 아빠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점원이 폭소하며 ‘굿(good)’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행복하세요’를 핀란드어로 외워 말하고 다니던 아빠. 그밖에도 어린 시절 이야기, 이른 나이에 가장이 되어 앞만 보고 달려온 이야기 등. ‘지금껏 우리가 살면서 해온 대화록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화를 한 것 같다’고 아빠가 말했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시간을 보낼 만큼 보내는 편이라 여겼는데. 친구도 1대1을 좋아하면서 왜 아빠와는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을까. 더 늦기 전에 와서 다행이다, 다음엔 어디를 갈까 이야기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아빠와 함께하고 싶은 일의 상상력이 넓어졌다.
귀국 후, 공항에서 뒤돌아 가는 아빠 모습을 보는데,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하얗게 센 뒤통수가 저만치 멀어지고 나서야, 여행 내내 아빠랑 듣고 불렀던 아빠의 ‘최애곡’, 정수라의 ‘어느날 문득’을 들으며 집에 돌아왔다. 실은 마지막 도시로 이동하던 버스에서 이 노래를 듣다 아빠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너도 예순 넘어서 들으면 울 거라 하셨다.
‘그땐 왜 그랬을까/그땐 왜 몰랐을까/사랑에 이별이 숨어 있는지/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듯이/날 위해 이제는 다 비워야는데/아직도 내가 날 모르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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