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인들 “튀르키예 정부가 우릴 버렸다”… 강진에 갈등 격화[글로벌 현장을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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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터키 남동부 아디야만 초입의 한 지진 구조 현장. 8층짜리 거주지 건물 붕괴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일반 주민이었으며 그중 대다수가 쿠르드족이었다. 이들은 “정부가 우리를 챙겨주지 않는데 우리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아디야만=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9일 터키 남동부 아디야만 초입의 한 지진 구조 현장. 8층짜리 거주지 건물 붕괴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일반 주민이었으며 그중 대다수가 쿠르드족이었다. 이들은 “정부가 우리를 챙겨주지 않는데 우리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아디야만=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강성휘 카이로 특파원
강성휘 카이로 특파원
“튀르키예(터키) 정부는 여기 없다. 슬픈 쿠르드인만 있을 뿐이다.” 8일(현지 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아디야만에서 만난 쿠르드족 알리 바란 씨(23)는 생면부지의 기자를 보자마자 격앙된 목소리로 “터키 정부는 나쁘다”는 말을 영어로 반복했다. 아디야만은 6일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를 강타한 강진의 피해가 집중된 곳이다. 그는 당국이 쿠르드계 구조를 내팽개친 채 튀르키예계만 우선적으로 살리고 있다며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는다.우리끼리 서로 도우며 수습에 나서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7일 인근 디야르바크르에서 만난 하즈 살르시 씨(75)는 “정부가 발 빠르게 대응해 준 덕에 생존자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먹을 것도 충분하다”며 정반대 반응을 보였다. 행정 수도 앙카라 출신이라는 그는 줄곧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진 대응을 호평했다. 살르시 씨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정부가 큰 도움이 되어준 덕에 버티고 있다”고 했다.


기자는 지진 피해 취재를 위해 7일부터 12일까지 6일간 튀르키예 현지에 머물렀다. 쿠르드족을 둘러싼 튀르키예의 사회 갈등이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에서 나오는 분진만큼 잿빛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대 약 35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족은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으로 불린다. 오랫동안 튀르키예, 시리아, 이라크, 이란, 아르메니아 등에 살며 고유 언어와 문화를 지켜왔지만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여 아직도 독립국가를 건설하지 못했다.

특히 튀르키예에는 인구의 약 20%인 최대 2250만 명의 쿠르드족이 거주하고 있다. 2003년 집권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줄곧 쿠르드족을 거칠게 탄압한 데다 이번 지진 피해 지역이 쿠르드족 밀집 거주지여서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 아디야만, 하타이 등에서는 이곳이 쿠르드계가 많은 지역이라 에르도안 정권이 늑장 대처한다는 원성이 상당했다.
지진 현장 곳곳서 군인과 몸싸움
아디야만에서 만난 또 다른 쿠르드인 데브란 카라엘 씨는 “쿠르드를 위한 정부는 어디에도 없다. 아무도 우리를 돕지 않는다”고 했다. 튀르키예뿐 아니라 시리아, 이라크, 이란 정부 또한 자국 내 쿠르드족을 혹독하게 탄압한다는 의미다.

디야르바크르에서 아디야만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쿠르드족 동포를 돕기 위해 다른 도시에서 달려왔다는 쿠르드인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만난 한 쿠르드계 봉사자는 “아디야만에 거주하는 친척들이 일손이 필요하다고 해 친구 넷과 함께 급하게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예민해진 쿠르드계 주민과 튀르키예계 주민 사이에는 금방 주먹다짐이 오갈 듯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일부 쿠르드계 주민들이 기자에게 에르도안 정권을 비판하는 인터뷰를 하자 튀르키예계 주민이 “왜 외국에 정부를 욕보이는 짓을 하느냐”며 고성을 치는 일이 잦았다.

한 구조 현장에서도 쿠르드계 주민이 “제발 가족을 구해달라”며 군경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자 인근의 쿠르드계 주민과 군인들이 잠시 단체로 주먹다짐까지 했다.
각국과 미로처럼 얽힌 이해관계
쿠르드족의 역사는 고난 그 자체다. 서구 강대국과 중동 각국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들을 이용하면서 독립국가 건설이 요원해졌고 각국 정부와의 갈등 또한 격화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쿠르드족에게 “오스만튀르크와 맞서 싸우면 독립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참전했지만 승전국은 1923년 ‘로잔 협상’을 통해 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쳤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또한 사담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탄압받던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지원하며 이라크 사회 분열을 조종했다.

2003년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 당시 이라크 내 쿠르드족의 도움을 받았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졌지만 튀르키예, 이라크, 이란 등의 강한 반대로 독립에 실패했다. 2014년 이슬람 수니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 맹위를 떨치자 쿠르드족은 다시 미국과 서방을 도와 IS 격퇴에 앞장섰다.

쿠르드족은 거주 인구가 가장 많은 튀르키예 정부와 가장 격하게 충돌하고 있다. 1923년 공화국 설립 후 튀르키예는 쿠르드어 교육, 쿠르드식 이름 등을 금했다. 이 와중에 1987년 무장투쟁 등 강경 노선을 통해 분리 독립을 이뤄내겠다는 무장단체 ‘쿠르디스탄노동자당(PKK)’이 등장했다. PKK는 시리아 내 쿠르드족이 주축이며 온건한 노선을 추구하는 ‘쿠르드민병대(YPG)’, ‘시리아민주군(SDF)’ 등과도 척을 지고 있다. 튀르키예는 PKK를 IS 못지않은 테러단체로 본다.

IS 퇴치를 위해 잠시 협력했던 튀르키예와 쿠르드족의 갈등은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행정부가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하며 더 격화됐다. 에르도안 정권은 시리아 정부군의 손길이 미치지 않으며 미군도 없는 시리아 북부에 지상군을 파병했다. “YPG는 PKK의 분파”라며 시리아 북부에 무차별 공격을 가했고 민간인 피해가 속출했다. 에르도안 정권은 지난해 11월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의 배후로도 PKK를 지목했다.

양측의 갈등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계속됐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을 신청하자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는 두 나라가 쿠르드족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에르도안 정권은 스웨덴과 핀란드에 거주하는 일부 쿠르드인을 튀르키예로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체제 인사를 튀르키예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나토 가입을 불허한다는 의미다. 나토 신규 가입에는 30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노렸다.
지진 빌미로 탄압 강화 우려
튀르키예와 시리아 정부가 이번 지진 후 사회 혼란을 방지한다는 목적을 앞세워 교묘히 반대파를 탄압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에르도안 정권은 10일 지진 현장의 약탈 및 절도를 엄벌에 처하고 단속 또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일부 쿠르드계는 “당국이 쿠르드계를 탄압하는 용도로 쓸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에르도안 정권이 지진 대응을 핑계로 시민 기본권을 축소할 것이란 걱정이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시리아 인권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튀르키예가 지진 발생 후 처음으로 13일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계 또한 공습했다고 밝혔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 또한 지진 발생 불과 몇 시간 만인 6일 쿠르드족이 많은 북부의 반군 거주지 마레아를 폭격했다.

아디야만 주민 아흐메드 씨(49)는 12일 “최소 수년간 이어질 지진 피해 복구 기간 내내 튀르키예 당국과 쿠르드족의 갈등이 롤러코스터처럼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디야만·디야르바크르(튀르키예)에서

#쿠르드족#단일민족#강진#탄압 강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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