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안 보이던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고 코로나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시점이다. 반가우면서 한편으론 낯설게도 느껴진다. 실내 마스크 의무화 해제 소식을 듣자 바로 떠오른 것이 얼굴 화장이었다. 오랜만에 입술 화장을 하면서 ‘립스틱 매출이 증가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마스크 해제가 립스틱을 파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예상은 조금 빗나갔다. 한국에서 마스크를 벗는 사람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적은 것 같다. 혹시 이런 경향이 한국 사람들만의 심리와 문화적 요소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사는 이민자로서 한국인들의 독특한 반응이나 행동에 대해 늘 “왜?”, “어쩌다가?”같은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필자의 이러한 성격은 한국 사람과 한국 사회를 알아가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 ‘소극적 마스크 해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됐다.
필자가 본 한국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분위기가 마스크 해제와도 연관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워 본다. 하지만 배려심이 많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 사람들은 부모와 주변으로부터 “눈치껏 해라”, “눈치 있게 행동하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란다. ‘눈치가 백 단’ 같은 말도 있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은 남을 생각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남의 시선 때문에 감정이 다치고 심리적으로 억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화병(火病)도 이런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이런 병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서 백과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봤다. 화병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 되나, 질병의 발생이나 증상의 출현에 한국 특유의 문화적인 배경이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한국 언어에서도 눈치를 보다가 생긴 듯한 어색한 표현들이 존재한다. 특히 거절을 할 때 쓰는 표현들이 그렇다.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사회적 위치가 높을수록 표현법 자체가 극도로 달라지는데, 필자가 듣기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심스럽다. 이런 극존대어를 들을 때마다 흥미롭다.
본인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자신감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한 예로 누군가에게 “어떤 남자를 좋아해요?”라고 물을 때가 있다. “나는 키 크고 배려심이 많은 남자를 좋아해요”라고 똑 떨어지게 말하기보다는 “나는 키가 크고 배려심이 많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고 마무리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러한 대답의 태도는 겸손함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를 문법대로만 배운 외국인의 경우, 대답한 사람에 대해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인가” 의아해하게 된다.
한국에 살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표현이 있다. 바로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을 다시 마주칠 때마다 난 속으로 “이 사람은 나하고 밥을 먹겠다고 말해 놓고 왜 만날 시간과 날짜를 얘기 안 하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람들은 상대와 특별히 얘기할 거리가 없을 때, 조용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을 때 무의식적으로 “밥 먹었어?” 혹은 “언제 한번 밥 먹자”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어쩌면 이 또한 상대방을 배려해서 나오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왜 연락을 안 하지’ 하며 궁금함을 가진 적도 있다.
한국에 살며 한국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 속에 숨겨진 뜻과 의미를 해석하고 익숙해지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아직도 잘 모르는 표현과 말이 존재한다. 마스크 없이 대화해도 어쩐지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가 그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실제 마스크도, 눈치 보며 돌려 말하는 ‘언어적 마스크’도 조금 벗어보면 어떨까 싶다. 필자가 소개한 것 말고 한국 사람들만 쓰는 독특한 표현이 있다면 더 알려주시길 바란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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